터 키는 이슬람 권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유럽권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정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나라였다. 멀지만 우리와 같은 뿌리를 가졌다는 이해가 우리에게 있었고 저들도 우리를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같은 뿌리의 잔재는 우리와 문법이 완전히 동일한 그들의 언어 속에 많은 단어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밥은 밥, 물은 수, 네는 네 등) 우리와 닮은 급한 민족성, 지기 싫어하는 마음과 함께 우리의 농촌과 흡사한 따뜻한 풍습까지 겸해서 남아 있었다.
이 나라는 한반도의 3.5배나 되는 땅 위에 남북한을 합친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Bosphorus 해협 북서쪽에 Thrace라고 불리는 작은 지역이 유럽 땅에 속하기 때문에 이 나라는 NATO 에 속해있고 지금은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표면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 나라가 이슬람 국가(99.8%)라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이 나라가 99.8%의 이슬람 국가라는 느낌이나 그에 따르는 불편함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이 나라는 개방되어있고 선진화에 발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이 나라에서 부러운 것 몇 가지가 있었으니, 첫째는 끝에서 끝이 보이지 않게 한없이 펼쳐진 비옥한 땅이다. 이들은 실제로 남한 인구의 1.6배인데 비해 경작지는 남한의 14배를 갖고 있다. 들판의 양들은 살쪄 있었고 어디를 가나 음식은 먹을 만 했다. 비료 값이 비싸고 땅도 너무 넓어서 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모든 농작물은 유기농이라 한다.
둘째는 이 나라의 건국시기에 좋은 지도자를 가질 수 있었던 점이다. 한 나라에 100년 만에 한번만 좋은 지도자가 나와도 온 국민이 그 덕을 보면서 살수 있었다는 것이 나의 의견인데 터키 공화국의 설립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군인으로써 이 나라의 영토를 찾아내어 지켰고 (G.Washington 과 이순신)
아랍문자를 폐기하여 새로운 표음 문자를 제정하였으며 (세종대왕) 정치와 종교를 엄격하게 분리하여 서로 영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미국 헌법기초의 한 부분) 하였다. 그가 이루어 놓은 초석 위에서 현대의 터키는 아랍권의 한 나라로 쳐져 뒤지지 아니하고 개방된 나라로NATO 회원국들과 함께 발전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람의 이름은 Mustafa Kemal Pasha Ataturk 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나마 어려운 시기에 박정희라는 군인이 나타나서 오늘만큼이나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을 놓아 주었고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참 다행스런 일이다.
셋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애국심이다. 터키의 어느 곳, 어느 구석에 갈지라도 빠짐없이 걸려있는 터키국기를 보게 된다. 법도 규제도 아니건만 우러나오는 나라 사랑의 표현이라는 설명에 공감이 간다. 또, 태극기가 받고 있는 대접을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이다. 신세대를 의식하면서 그들이 나라 없는 민족은 지구상의 어느 곳에 살지라도 결국 Homeless 와 같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쿠르드족(KRUDS)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터키는 우리가 어려웠던 시기 6.25동란 때에 미국다음으로 많은 15,000명의 군대를 우리에게 보내 주었었다. 정교한 무기를 가지지 아니하였을 터키 군인들이 총알받이로 쓰였을 것은 명약 관화( 明若觀火 )한 일이고, 따라서 사상자의 비율이 엄청 높았을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부산 서면의 언덕바지 UN 묘지에 끝없이 넓게 뭍혀있던 UN 병사들의 묘지를 기억한다. 그 중에 두번째로 많았을 것이 당연히 터키인들의 묘지였다.
사람이 죽어 한곳에 묻히면 이장하지 아니하는 것이 이슬람의 법이다.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묻힌 땅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조상이 묻힌 땅, 즉 조국( 祖國 )이 된다. 한국은 많은 터키인들에게 조국이라고 불리우는 땅이 된것이다.
현대자동차의 Accent라는 모델이 터키내에서 판매율 1위라는 것은 그 성능과 모양만이 구매조건을 아니였을 것이다. 우리의 귀한 아들들이 남의 땅에 가서 싸워주면서, “광나루 걷는길에 비가 내려서 내님의 옷자락이 땅에 젖었네” 라고 고향을 그리면서 노래했다면 우리에게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될수 있다.
6.25를 거친 세대들이 터키군인들에게서 배워서 “위스키달라 쏘주달라 막걸리달라 …”라고 따라부르던 노래속에 위스키다르(USKUDAR/USKA DARA)는 Bosphorus해엽의 Marmara Sea의 동쪽(아시아쪽) 언덕을 가리키는 지명인데 서울의 광나루나 노량진에 해당된다. 우리는 Bosphorus 해협을 배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그들의 애환섞인 노래가 우리의 뼈아픈 추억속에 섞여있음을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Bosphorus 해협을 가로지르는 현수교(Suspension Bridge)는 일본회사가 $1.00에 건설해 주고 통행료를 거두어 3년만에 수익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는 Marmara Sea 를 바닥으로 가로지르는 터널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기초설계는 미국회사(Parsons Brinkerhoff)가 했고 세부설계는 일본(Pacific Consultants, Japan Railway,Oriental Consultants)과 터키 (Yuksel Uluslararasi)등이 참가하였으며 공사는 프랑스 ,일본, 터키등이 함께 참가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터널을 통하여 승객들을 실어나를 열차의 구매 조달은 한국(Hyundai Rotem)이 맡았다. (미토목학회지:2009년 4월호) 어느 형태로든지 한국이 이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위안이 되는 부분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고 있는 Bosphorus해엽의 양쪽만 더듬어도 볼거리가 족히 일주일이상 걸릴만큼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곳이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리우던 시절에 이땅을 지배했던 동 로마제국의 발자취가 있을 것이고 그 뒤를 이어 이곳을 이스탄블이라 이름하며 600년 이상이나 이땅을 지배했던 오스만 터키의 잔재 또한 너무나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정윤
미 토목학회 회원, PE- 토목/구조 전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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