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설명
위 - Blue Mosque 와 내부 사진 (블루 모스크- 술판 아흐멧 자미) 소피아 성당을 능가하겠다며 지은 오스만 제국의 자존심이다.
아래 - 소피아 성당안의 성화: 이슬람사원으로 사용되던 벽면의 회칠이 벗겨지면서 500년간 잠자고 있던 성화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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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phorus 해협에서 올려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소피아 성당이다.
소피아 성당은 동로마 제국의 Justinian황제가 직접 챙기면서 5년간의 공사끝에 AD 537년에 완성하였는데 그때에 그 규모와 내부장식의 화려함에 황제 스스로가 감격하여서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노라”라고 외쳤다는 기록이 있다. 공감할 수 있는 탄성이다. 이 건물은 그 이후 1000년 동안을 세계에서 가장 큰 대성당으로 남아있엇다. 실제로 이 건물안을 들여다 보면서 나는 1500년전에 엄청난 공사를 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건물은 돔(Dome) 아래에 더 넓은 공간을 기둥없이 확보하기 위하여 pendentive라는 공법(돔아래 더 큰 돔을 필요한대로 도려내고 받침으로 쓰는것)을 썼는데 이것은 어느시대에 쓰더라도 대단히 까다로운 공법이다.
Dome의 높이는 현대건물로 치면 15층이 더 되는 높이이다. 그 이후로 이건물은 대략 다섯번의 지진으로 피해를 보게되는데 그중에 세번은 Main Dome이 완전히 주저앉는 큰 피해였다. 그러니까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보고있는 모습은 1847년에서 1849년 사이에 이태리에서 불러온 형제 건축가들이 고쳐놓은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건물은 대략 900년간 동방정교의 대성당으로 쓰였고, 그 이후 500년간 회교사원으로 쓰이다가 이제는 Museum으로 쓰인다.
그 성당 내부의 화려한 대리석이나 벽화,장식 등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것이 옳다. 그것들은 직접 보아야 각 개인이 주관대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진에도 무너지지 아니하고 남아있는 부분들이 있다. 그러니까 그런 부분들은 대략 1500년을 견디어 냈다는 뜻이 된다. 이런건축에서 큰기둥, 큰석재가 모두 중요하지만 건물을 건물처럼 서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벽돌과 벽돌사이. 돌과 돌사이에 들어가는 접착제, 즉 세멘트이다.
나는 사실1500년전에 쓰여진 벽돌과 벽돌사이의 세멘트를 보면서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 하늘을 찌를둣이 서있는 맨하탄의 마천루들이 1000년후에도 존재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1500년전 사람들이 무슨방법으로 어떠한 시멘트를 만들어 썼을까. 이것은 아직도 풀지못한 숙제로 내게 남아있다.
소피아 성당 근처에는 비슷한 모양으로 지은 Blue Mosque 가 있는데 이곳은 내 일생 처음으로 들어가본 이슬람 사원이다. 크게 잘 지었고,나는 그안에서 잠시 기도할 수 있었다. 사원주위의 벽면에는 여러개의 발씻는 수도꼭지가 준비되어 있는것도 눈에 띄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겼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진 것인데 인간이 하나님 만나기를 갈구하는 행위가운데 비슷한 절차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동식물과 인류를 포함하는 모든 생명체의 모든 행위는 예외없이 궁극적으로 개체보존(個體保存 )과 종속번식(種屬繁殖) 이라는 두개의 목표로 귀납(歸納)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로는 도저히 납득(納得) 할수없는 개념, 즉 이슬람 이라는 종교가 인류라는 종(Species)이 추구하는 목표에 무슨 도움을 주었기에 1400년을 존속하며 확장되어 갈 수 있었을까. 이것은 오로지 사막이라는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위한 인류라는 종(Species)의 몸부림에 불과하였던 것일까.
이런 의문들을 마음아래 깔아 놓은채 400여년간이나 오스만 터키 제국의 심장부였던 Tokapi 궁전을 찾게 되었다. 궁전은 넓고 깨끗하며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들의 통치철학의 잔재들이 눈에 뜨이는 듯했고 통치에 쓰였던 많은 유물들이 있었다.
동로마 제국을 이어받아 지중해 연안과 북부 아프리카를 장악하여 600여년간을 통치했던 오토만 제국은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였을 것이다. 통치자들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바로 서려고 노력하였던 흔적들이 눈에 띄였고 공의를 실천하기 위한 수단(형벌)은 온 곳에 가득했다.
이곳에 남 아있는 유물로는 동로마제국 때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것들도 많이 있었다. 모세의 지팡이로 알려져 보관된 유품이 있는데 싹이 난 흔적은 볼수 없고 일반적인 이해와는 달리 이것은 대나무 종류로 만들어진 지팡이였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값나가고 현란하고 화려한 소장품들이 많았는데 특별히 여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Spoon maker’s Diamond 로 불리우는 86캐럿짜리 엄청난 크기의 다이아몬드였다. 실제로 이것은 너무커서 돌같이 보였다.
틀린것을 가지고 잠시동안을 견딜수는 있지만(공산주의가 70년 견딘것 같이) 이슬람이 10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었다면 그 속에는 틀림없이 인류(Human Species)의 삶의 목표에 공헌 할수 있는 무엇(Merit)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많은 재물들과 그렇게 큰 권력들이 오늘날 개신교의 지도자들에게 맡겨진다면 과연 며칠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궁전을 나섰다.
로마인들은 반도에서 태어나서 농산물을 주식으로 삼았으니까 우리들처럼 짝달막한 체격이였겠지만 그들의 행적을 볼때마다 나는 경탄을 금치 못하고 동시에 매력을 느낀다. 그리스인들은 생각하고 있을때 이들은 행동하고 있었고 중국인들이 막고(만리장성)있을때 이들은 뚫고(로마가도) 있었다.
불란서왕궁의 무도회장은 변소가 없었지만 (형식:베르사이유), 이들이 모이는 곳에는 수세식 변소에 음악까지 곁들이고 있었다. (실용:에베소) 이들의 가장 큰 매력은 끔찍하도록 실용성을 갖추었다는데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매력이 로마인 들의 자손들에게 오늘날까지도 모든 디자인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스탄블에서 로마인들의 이러한 실용성을 다시한번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Yerebatan Cistern으로 알려진 이 지하 물탱크는 또 한번의 경탄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당시 잡신들을 모시는 신전에서 재목들을 뜯어다가 만들었다는 땅속의 구조물로는 정말로 그 규모가 컸다. 세계에서 물이 모자란다는 어느 곳에서도 이런류의 물저장 설비는 들어본 일이 없다. 이런 종류의 물저장 설비가 이스탄불 근처에만 60개가 넘는다니 이것은 더욱 놀랄만 한 일이였다.
이스탄불은 오래된 도시이니까 넓은 시장터가 형성되어 있을것은 당연했다. 현지 주민들의 손으로 그려진 그림 한 두점을 구할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Great Bazaar 라는 곳을 찾게 되었는데 이곳은 5,000개가 넘는 상점들이 있고 규모면에서 상당히 넓었다. 한 두가지 물어보면” No China” 라고 대답하는데, 자기 물건는 중국산이 아니라는 뜻이였다. 하지만 실제로 이 시장 전체는 중국산 물건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결국 아무것도 못 사들고 나왔다.
이스탄불 이외에 우리가 방문 했던곳은 대부분 신약성서의 초대교회들과 관련이 있는 장소들이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거리, 그리고 현재 실제로 남아있는 유적들의 유무와 그 상태를 고려하여 우리는 계시록에서 거명된 소아시아의 칠대교회중에서 네군데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라오디게아)만 방문할 수 있었다. 초대교회란 결국 기독교의 초기에 자기들의 신앙을 지키고자하는 신앙공동체가 정치적인 핍박을 피하여 숨어살던 신앙공동체를 말한다. 짧게 표현하면 정치가 종교를 핍박하던 때의 현상이다.
반대로, 아야톨라 호메니 이후의 이란은 오늘날까지 종교가 정치를 좌우하는 형태로 지내고 있다. 얼마전까지의 아프가니스탄도 마찬가지였다. 위의 두경우 모두 궁극적인 희생자는 일반 백성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상적으로는 종교와 정치가 서로 독립하여 완전히 분리되는 것(mutually exclusive)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한것이다. 정치와 종교는 모두 동일한 client(백성)을 상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자 하는 노력은 미국의 기본 헌법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신앙의 자유-정치가 신앙을 지배할 수 없고, 종교가 정치를 좌우할수 없는 것) 그리고 터키의 국부 Kemal Pasha Ataturk도 이것을 국법으로 정했다. 이 부분이 내가 그에게 credit을 주고 있는 이유이다. 정치와 종교가 유착하면 썩은 것 말고는 나올것이 없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신정윤
미 토목학회 회원, PE- 토목/구조 전문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