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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기억, 스페인 포르투칼 모로코 여행”
그토록 기대하고 고대했던 여행이 시작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Air France의 파업소동으로 우리 여행의 시작은 꽤나 요란스러웠다. 아닌밤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여행을 하루 앞두고 희망에 부풀어 있던 내게 한스 여행사에서 걸려온 전화 한통… 비행기가 안 뜬단다, 세상에!! 순간 페닉상태로 들어가려는 나에게 무슨수를 써서라도 스페인에 데려다 놓겠다는 조앤 사장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기다리고 있는동안, 그야말로 여행사에서는 비상이 걸려 밤잠 못자며 뒷수습을 하고 있었고 에어라인을 몇번이나 바꿔가며 결국 직행으로 리스본 포르투칼에 당도할수 있게 일을 해결해 놓았다. 드디어 출발 당일날, 우리는 비행기 대신 버스를 타고 뉴욕까지 빗속을 헤치며 이동했고, 손님들을 공항에서 힘들게 기다리게 할수 없다는 조앤 사장님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근처 호텔로 들어가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3시에 직행 비행기를 타고서야 드디어 포르투칼에 당도할수 있었다.
항공사의 어이없는 횡포에 분노할만 했지만 나를 실망 시키지 않은 한스 관광의 역량에 힘입어 다행이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할수 있었다. 왜 그리 미국땅을 뜨기가 힘들었는지...아마도 앞으로 펼쳐질 근사한 여정을 위한 준비과정이자 혹시 모를 여행시의 홍역을 미리 한방에 치른것이 아닌가싶다.
아무튼 리스본에서의 첫날은 누적된 피로와 드디어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맥이 풀려 뭘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않는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행에서 포르투칼이란 나라가 얼마나 대단했던 나라이고 진취적인 민족이었는지 바로 느낄수 있었다. 그 옛날 유럽인들이 지구의 땅끝이라고 믿었던 신트라 마을에다 발도장을 찍고 여행객 티를 있는대로 내며 지구 땅끝까지 왔었다는 바티칸이 인정하는 증명서에 줄을 서서 결국 내 이름을 새겨넣었다.
비록 지금은 예전의 영화를 찿아보기 힘든 나라가 되어 버렸고 1751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많은 유적지들마저 사라져 버렸지만 아직도 군데 군데 남아있는 자취들은 그 화려했던 과거를 짐작할수 있게 해주었다. 아직도 금세공 기술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나라, 자신들의 통치권을 가졌던 스페인을 무척 싫어하고, 바다로 향한 남편과 연인을 그리워하며 구성지게 파두를 노래하며 슬픔을 포옹하는 여인들이 있는 나라 , 해물밥과 포르토 와인이 유명한 나라, 콜럼보스를 배출한 나라, 포르투칼은 이렇게 잠깐 스쳐서 지나가기엔 뭔가 아쉬움을 느끼게하는 베일속에 숨겨진듯한 나라였다.
그렇게 포르투칼에서 콜럼보스와 뽕발 제상등 유명세를 떨친 인물들에 얽힌 재밌는 일화들을 놀랍도록 해박한 지식을 가진 우리의 현지 가이드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발걸음을 다음 행선지로 돌려야했다.
두번째로 방문한 나라 모로코... 내가 가장 기대하고 가보고 싶었던 나라다. “스페인이 아니고 모로코?” 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예전부터 뭔가 신비로움을 간직한것 같은 이 나라에 대해 난 아주 풍부한 상상력과 궁금증을 가지고있었다. 스페인의 타리파 항구에서 쾌속 페리를 타고 두세 시간 남짓 지브랄타 해협을 가로질러가니 모로코다. 유럽과 마주하고 있고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답게 내가 알고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느낌은 거의 없었다. 왜 이리 땅덩어리들은 큰지 버스를 타고 하염없이 달려서 드디어 페즈란 도시에 당도했다. 물론 버스안에서 보이던 풍경은 모로코를 향한 나의 기대를 더욱 더 고취 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황량한 사막 위를 당나귀를 탄 양치기와 그의 양 떼 들이 고적한 석양빛을 받으며 서서히 움직이던 풍경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도 매혹적이다. 그렇게 도착한 페즈는 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높은곳으로 전체 인구 70만중에 37만의 인구가 미로의 구도시안의 7000개의 빌딩안에 산다고한다. 이곳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절대 찿지 못한다는 가이드의 협박아닌 협박이 빈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많은 좁은 골목길들이 서로 엉켜있던 미로의 도시, 마치 그속으로 빨려들어 갈것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도시였다.
그 착각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 동안 도착한 우리의 다음 방문지는 그 유명하고도 유명한 “카사블랑카”!! 너무도 많은 여행자들이 카사블랑카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다는걸 간파하고 있는 우리의 추박사님께서 아무리 카사블랑카에는 험프리 보가트가 없다고 외쳤어도 나는 이도시가 너무 멋져보였다. 특히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사원인 하산 2세 사원의 밤 야경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아마도 카사블랑카의 환상이 내게 아직도 남아있는건 이 사원의 정경을 달빛과 더불어 마음에 담았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하지만 내게 기억되는 모로코의 진정한 매력은 하염없이 뻗어있는 고속도로 위에 자동차와 당나귀가 함께 공존하며 서로 어우러져 사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던 그녀만의 오묘한 신비함이었다.
이렇게 나를 설래게했던 모로코를 뒤로하고 도착한 우리의 본격적인 여행지,
스페인!
많은 여행자들이 유럽의 관광지중 단연 최고로 꼽는다는 스페인, 볼거리가 너무나도 많고 방문하는 도시마다 마치 다른 나라를 다녀온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개성이 넘치는 나라였다. 그 수많은 스페인의 방문지들 중에서 내 마음을 유난히 사로잡았던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붉은별빛) 궁전.
스페인 세라 네바다 능선 끝자락에 자리잡은 이베리아 반도를 장악했던 이슬람의 마지막 권력의 상징이었던 그야말로 보석같이 빛나던 아름다운 궁전이었다.
이곳에 있던 반나절 남짓한 시간동안 나는 천년전의 시간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라나다를 떠나 마드리드로 가는중에 잠깐 들린 돈키호테의 하얀마을. 휴게소 하나에서도 독특한 스타일을 찾아볼수있는 진정한 스페인 여행의 묘미! 돈키호테의 스토리를 담은 타일벽화를 비롯해 여러가지의 재미있는 사진들을 찍기에 아주 적합했던 의외로 인상깊었던 30분간의 짧지만 알찼던 휴식 시간이었다 .
드디어 마드리드에 도착,
우리는 먼저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해 벨라스케스와 고야등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들을 둘러 보았다. 미술을 전공한 추박사님의 재밌는 설명으로 책에서만 보던 그 유명한 그림들을 한층 더 생동감있게 느낄수 있는 경험이었다. 이 기회에 미술 공부를 좀 하고 싶다는 얼마나 갈지 모르는 욕심이 살짝 들기도 했다. 그 다음에 방문한 피카소 미술관. 이건 나에게 쇼킹한 경험이었다. 그림 방면으로 심하게 무식한 나는 피카소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왜 그가 천재라 불리는지 이해도 잘 안 되었었다. 하지만 이 미술관에서 그의 어머니가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는 유년 시절의 그림부터 시작해 그의 평생에 걸친 작품들을 보면서 난 그의 천재성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할수 밖에 없었고 피카소의 그림이 걸려있는 미술관들을 집에 가면 꼭 찾아서 가 보겠다는 약속을 나 자신과 하고 있었다.
한스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팀Real Madrid 경기장에서의 저녁 식사. 빈 경기장 관람료만 20유로를 받는다는 전설적인 축구팀의 홈그라운드에서 스페인 대표 음식중 하나인 도토리만 먹여 키운 돼지고기 디쉬에 한잔의 레드와인까지 곁들이며 먹은 저녁은 그야말로 분위기 짱 음식 짱이였던 대박 이벤트가 되었다. 풋볼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내가 이참에 아예 축구도 좀 좋아해 볼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 근사한 경험이었다.
다음날 우리의 행선지는 마드리드에서 한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스페인의 중부 도시 톨레도였다. 온 도시가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그야말로 온몸으로 역사를 끌어안고 있는것 같은 도시였다. 톨레도 중심부에 자리한 톨레도 대성당은 스페인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기념으로 지어진 것이라는데 그 웅잠함과 화려함은 유럽의 그 어떤 대성당에도 밀리지 않는 자태였다. 포스트 카드에서 막 뛰쳐 나온것 같은 사진을 찍을수 있는, 아주 인상 깊은 도시였다.
워낙 먹는걸 좋아하는 내게 외국여행의 묘미는 뭐니뭐니 해도 그곳에서만 먹을수 있는 특식^^. 나를 즐겁게 했던 이날의 점심식사는 바로 “애저”, 40일 미만의 애기 돼지고기 요리.
앞에 놓여있던 돼지 껍질은 너무 쫄깃쫄깃 맛있어서 우아한 (?) 나를 결국 포크와 칼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태클하게 만들정도로 환상적이었다. 마침 이날은 우리 일행중 한분의 생일까지 겹쳐 케익과 남스페인 사람들의 축하 노래들, 사람 너무 좋게 생긴 식당주인의 와인과 샴페인 선물까지 완전 축제 분위기 속의 식사시간 이었고 남을 위해 울어준다는 남스페인 사람들의 정감을 느낄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였던, 바르셀로나… 자신들은 스페인 사람이 아니고 카탈루냐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살고있는 도시. 이 도시의 재정을 책임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가우디를 비롯해 피카소와 미로등 천재 예술가들을 배출한 바르셀로나는 지중해를 끼고있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중의 하나로 유명한데, 도시 곳곳에 가우디가 디자인한 건물들에 모던한 건물들과 르네상스풍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있는 독특한 매력이있는 도시였다.
우리팀에게 여행내내 따라다니던 행운의 여신이 역시 여행의 마지막 날에도 함께 하셨다. 그 오랜 시간을 끌던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의 내부 공사가 마침내 완성되어 그 성전안을 볼수 있었다는것! .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가우디가 디자인 했다는 이 성전은 내가 봤던 유럽의 다른 성전들보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인부들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지어줄 정도로 따뜻한 가우디의 인간성이 주는 감동은 그 어떤 호화로운 성전들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가우디의 인생이 담겨있다고 할수있는 이 성전은 아름다왔고 인간의 무한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보여주는 탁월한 작품이었다. 이 성전과 더불어 가우디의 공원과 주거단지 주택 카사밀라까지 가우디의 천재성은 도시 곳곳에서 확인할수 있었는데 가우디의 집이 있는 공원Park Guell 은 가우디의 독창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공간이었다. 그의 예술세계는 시대를 앞서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공상영화에나 나올법한 건축물들과 화려하면서도 귀여움이 묻어나는 디자인과 휴식을 위한 공간들은 그의 진정성과 독창성 넘치는 상상력을 짐작하게 했다.
카사밀라는 가우디가 디자인한 주거단지 주택인데 아주 매력적인 아파트의 컨셉을 가진 공간이었다. 특히 옥상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거기서 사진찍고 사진찍히느라 깡총깡총 뛰어다니다가 드디어 발을 다치는사고를 냈지만 진통제와 얼음찜질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길거리 카페에 앉아서 마셨던 3000cc 의 맥주 덕분에 발이 씻은 듯이 낫는 기적아닌 기적이 일어나면서 나는 이 스펙테클했던 여행의 대미를 장식했었다.
하지만 몬세라트 수도원을 보지않고 어찌 스페인을 논하랴… 하얀 구름을 허리자락에 살짝 두르고 우리에게 손짓하는 수도사님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가까이 다가가니 고요한 수도원의 웅장한 풍채가 우리를 압도해왔다. 중세 수도사들 처럼 묵묵히 묵상하며 걸어 올라가진 못하고 비록 케이블카를 타긴했지만 구름사이를 뚫고 한없이 올라가니 경건하면서도 상큼한 공기가 우리를 반겼다. 카탈루냐의 모든 문화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 간만에 복잡한 생각을 비우고 이곳을 산책 하는동안 은연듯 떠오른것은 그 옛날 저 아래 세상과 동떨어진 이 높고 외진곳에 이처럼 아름다운 수도원을 지은것도 놀랍지만 그냥 손대지않은 자연속에 약간은 수수한 모습의 조용히 기도만 하는 자그마한 수도원이 있었어도 좋지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야말로 스팩태클했던 스페인 여행을 끝내면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점은 스페인이란 나라는 사진기에 담기는 힘든곳이란것, 우리의 마음에 담아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2주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 기간동안 둘러봤던 각각의 개성이 넘치고 인상 깊었던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칼 세 나라의 여행을 끝내면서 난 뭔가 새로운 에너지가 내 삶에 찾아오는 기분이었고 그 에너지를 가지고 나의 일상생활로 돌아가 조금은 더 생동감 있게 하루하루를 보낼수 있을것 같은 기분좋은 예감이 들었다. 여행은 즐거운 여행 동반자들을 만나면 그 기쁨이 몇배가 되는법… 이번 여행에서 맺었던 너무나도 소중한 많은 인연들이 아름다왔던 여행의 여운만큼이나 길게 길게 간직되길 바라며 매 순간마다 우리에게 어떻게든 조금 더 좋은 여행의 경험을 하게 해주려 열심히 백조의 물밑작업을 해주신 한스의 조앤 사장님께 다시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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