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963-4267         | hanstravelusa@gmail.com

Write Reviews

여행 후기를 남겨 보세요
Title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초대교회의 발자취 – 결코 쉬울 수 없는 믿음2009-09-22 14:26
Name




사진설명, 위 - 에페소의 셀수스 도서관- 에페소 유적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로 알려진 셀수스 도서관은 사도바울이 이곳에서 전도 활동을 하며 강론을 펼쳤다는 사실로 유명 하다.
아래 - 트로이 목마- 트로이 유적지는 차나칼레 도심 남쪽에 위치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
   우리 여행 팀은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우리 여행이 성지 순례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소 아시아 칠대교회는 모두 터키 서부에 위치하여 있을지라도 그 모든 교회를 모두 돌아보는 것은 우리 일정에 포함되어 있지는 아니했었다.  교회라는 말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예배나 미사를 보기 위한 건물, 또는 그 조직”으로 되어 있고 성격적인 해석은 간략히 표현하면 “부름 받은 성도들의 신앙 공동체”라고 표현될 수 있다.  다시 쉽게 표현하자면 교회라는 것은 세상적인 의미로는 건물을 말하고 성격적 의미로는 사람들의 모임을 말한다.  그런데 초대교회라고 불리는 곳에 갈 때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무엇, 즉 기둥 뿌리라도 찾고 있었다.  그런 것이 아니보일 때 마다 무엇인지 지나쳐갔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좀 더 냉철하게 생각하여 본다면 초대교회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미국내의 한인 개척교회들보다 백배 천 배 더 열악한 환경에 있었을 것 이다.
   건물로 자기들의 발자취를 남길만한 신앙공동체가 그 당시에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오로지 우리가 보고 깨달아 알수있는 것이 있다면 초대교회 당시의 사회상, 사회적인 환경, 정치적인 환경, 그런 요소들이 서로 주고 받는 영향을 오로지 짐작해 볼 수 있는 것뿐이다.

  실제로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에서 건물의 형태를 지니고 남아있는 서머나 교회 (폴리갑 기념 교회) 조차도 언제 어떻게 지어졌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교회가 17세기에 화재로 손상되고 1690년에 재건된 것이 오늘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버가모 지역에 남아 있는 Red Basilica의 Main building안의 한 부분을 버가모의 초대교회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초대교회가 Scrapis 신전의 한 부분을 세들어 사용했던 것인지 궁금하다.  AD313년 기독교 공인 이전에 이렇게 버젓히 예배를 드릴수 있었다는 것은 이해 하기 힘든 부분이다.

에베소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이고 그 주위에는 사도요한의 무덤과 교회, 성모마리아의 집과 성모마리아의 교회 등 많은 유적과 역사적 잔재들이 산재해 있다.  이곳은 사도바울이 삼 년 동안 목회하며 전도하였던 곳이고 (행 20: 31) 사도 요한이 말년에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살던 곳이기도 하고 그가 밧모섬에서 풀려 나와 다시 돌아와서 요한복음을 쓴 곳이기도 하며 마침내 자기의 육신을 이 땅에 묻은 곳 이기도 하다.  에베소는 오랜 기간 동안을 소아시아의 넓은 지역의 정치, 문화, 상업, 교역, 유흥의 중심지로 남아있던 흔적들을 지금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에베소의 전성기(대략 2세기)에는 인구 400,000명이 넘었을 것이라는 기록이 잇고 큰 축제와 행사가 있을 때는 바다 건너에서 까지 몰려와서 이 지역에 모이는 인구가 백만이 넘었다니까 대단히 번창했던 도시였던 것만은 틀림없다.
   한 때 파르테논 신전의 4배가 되었었다는 아르테미스(Artemis-다산과 풍요의 신) 신전의 잔재가 시내 중앙에 남아있고 Curetes Street로 알려진 도로는 대리석으로 깔려있으며 고급 상점들이 위치했던 구간의 길은 대리석 모자이크로 마치 카펫을 깔아놓은 듯 했다.  오늘날 뉴욕의 Tiffany 앞길도 대리석 모자이크로 깔아 놓지는 않았다.
    클레오 파트라(이 여자는 나일강 위에 배를 띄어 놓고 율리우스 카이자르와 함께 3개월을 지내면서 육지에 발 한 짝도 내딛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카이자르가 암살당한 이후에 카이자르의 친구 안토니우스와 결혼해서 여기까지 찾아왔던 모양이다)가 안토니우스와 함께 이곳에 신혼여행으로 와서 화장품과 향수를 샀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 당시 이곳이 사치의 극치를 만족시켜 줄 수 있었던 곳임을 짐작하게 할 수 있는 일화이다.  
   바로 그 건너편에 공중변소로 알려진 시설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수세식 변소이다.  여럿이 벽을 등지고 앉아서 변을 보게 되어있는데 변보는 소리를 숨기기 위하여 물 흐르는 소리를 요란하게 꾸몄고 음악도 곁들여 있었다니 참으로 로마인들 못 말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공중변소라지만 지극히 제한된 최 상류층만 사용할 수 있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Curetes Street를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Celsus 도서관이 나온다.  현재는 2층으로 된 뒷벽부분만 남아있다.  그 당시 지식층들의 활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도서관 맞은편에 공창(公娼-brothel)이 있고 도서관과 공창이 비밀 터널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공창은 길바닥에 버젓히 조각을 해서 광고까지 만들어 놓고 있었다.  사창, 공창이 이 사회에 얼마나 만연했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신전, 도서관, 고급상점, 고급변소, 공창/사창 이 모든 것들이 시내중심가의 가장 좋은 곳에 함께 위치하고 있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 4: 22),”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은 말하기에도 부끄러우니라 (엡 5: 12),”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엡 5: 3-6).”
   에베소 교회에서 오래 머물렀던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했던 이 말씀은 이제 넉넉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사도요한의 말씀 “잘 참는다”와 “사랑이 식었다” (계 2: 1-7)도 무슨 뜻인지 이해 할 수 있다.
초대교회인 서머나 교회는 어디에 어떤 형태로 있었는지 이제는 알 길이 없지만 사도요한의 수제자이며 서머나 교회의 4대 감독이었던 순교자 폴리갑의 기념교회는 이즈미르(Izmir-서머나의 현대이름)의 시내 한복판에 남아있다.
   “내가 86년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왔는데 그분은 나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아니하셨으며 하물며 나의 주인이시요 왕이요 구세주이신 그 분을 내가 어떻게 배반할 수 있겠는가”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타오르는 불길에 몸을 맡기어 죽도록 충성하면서 (계 2: 10) 순교한 폴리갑 감독을 기념하기 위한 교회인데 크지 않지만 잘 보존되어 있고 현재는 카톨릭에서 관리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미사를 드리는 교회(성당)로 쓰여 지고 있는데, 시도 때도 없이 매일매일 몰려오는 관광객을 대하여 주시는 수녀님은 친절하고 겸손했다.  몰려다니는 관광객들에게는 변소 찾는 것이 큰일중의 하나인데 관광객들이 사용하고 지나가는 물값만해도 대단할 것 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를 향해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던 수녀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즈미르는 인구 350만이 살고 있는 항구도시로 한국의 부산에 해당한다.  이스탄불과 앙카라 다음으로 터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비교적 잘 정리된 시내를 벗어나 바다를 끼고 돌아서 조용한 만(灣/Bay) 가운데 섬 위에 지어진듯한 숙소에 묵게 되어있었는데 이곳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서로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이다.  한편으로는 멀리 보이는 평화로운 항구도시, 확 트여진 지중해를 눈앞에 둔 채 지는 해를 함께 보고 뜨는 해를 반기면서 앉던지 서던지, 또는 바닷가를 거닐던지, 그때 그 자리에 함께 있기만 하면 되는 곳이다.  이것은 육학년에게나 칠 학년에게나 마찬가지다.

    버가모 지역은 옛날 그 당시 제우스 신의 제단을 비롯하여 대단히 많은 신전들이 모여 있었으므로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보면 우상 숭배의 총 본부였다.  너희들에게 이단자들이 있다(계 2: 14-15)는 말씀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이곳에는 아스클레피온(Asklepios; 고대 치료의 신, God of Healing)이라고 불리던 세계 최초/최대의 정신병원이 있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하려고 애썼던 흔적이 지금도 역력히 남아있다.  그리고 이 곳은 그 옛날에 20만권의 장서를 자랑하면서 애 급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경쟁하던 큰 도서관이 있던 곳 이기도 하다.  
   경쟁상태에 있던 애굽에서 버가모에 파피루스의 수출을 금지하게 되자 그 이후로 파피루스를 대체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것이 양피지(羊皮紙/Parchment)이다.  양피지(Parchment)라는 말은 버가모(Pergamum)라는 지명에서 유래 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BC 30년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화재로 많은 장서를 잃게 되는데 이로 인해 클레오파트라가 심히 상심하게 되었고 이 여인을 달래기 위해서 안토니우스가 군대를 동원하여 버가모 도서관의 많은 장서를 강탈해 갔다는 기록이 있다.  클레오파트라, 이 여자는 정말로 “끼”가 충만해서 힘센 남자 움직이는 일에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던 모양인데 현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누구와 견줄 것인가 궁금하다.  
호머의 일리어드에 나오는 트로이의 유적지가 정말로 있고 그에 딸린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정말로 놀라웠다.  우리는 함께 웃고 즐기며 함께 지내던 기억들을 가슴에 안고 새로운 내일을 위하여 차나 칼레 해협을 건너 마르마라 해를 따라 열흘간의 낭만을 뒤로하면서 이스탄불로 돌아와야 했다.

   여행의 목적은 과정이다.  나는 공항에서 공항까지 이 모든 과정의 순간 순간들을 우리 팀들과 함께 보고, 듣고, 깨달으면서, 많이 웃고 너무나 즐겼다.  열흘간을 함께 지내며 서로를 배려해 주시던 여행동기들에게 감사하고 우리들의 막내와 사진작가, 또한 우리와 동행하면서 여러 가지 배려를 아끼지 않던 여행사에 특별히 감사한다.  

글쓴이: 신정윤
미 토목학회 회원, PE- 토목/구조 전문기사
Comment

Hanstra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