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우즈벡키스탄 여행기 3

이 영묵 | 7/24/2015

우즈베키스탄 3 화

 

부하라에서 그리고 우즈벡 투르크 사람들

 

사마르칸트에서 4 시간 버스를 타고 부하라에 도착했다.  현재 30 만 인구의 도시지만 2천 5 백년 전의 유물들이 발굴되는 오랜 역사적 도시이고 이란, 인도, 그리고 서구의 교류의 중심지였다. 본래 부하라는 말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스님을 만나는 장소’라는 뜻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

 

BC 2 세기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당해 있다가 그 후 BC 2세기부터 Kushan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가 8 세기 초부터 아랍에 정복 당하여 그때부터 역사 전문가가 아니면 그저 이슬람 정권들의 쟁탈이 이어져 가다가 19 세기 말에 러시아에 정복 당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페르시아의 문화와 종교적 잔재가 남아있고, 유태인들도 있어 의사를 비롯하여 양복, 신발 같은 것을 만드는 기능공들로 잘 살고 있었다 한다.

 

우즈벡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몹시 싫어하는데 그리면서 병이 나면 우선적으로 유태인 의사를 찾고, 음악 가정교사를 원하면 일차적으로 유태인들을 찾는다고 하니 우습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많은 유태인들이 이스라엘로 가고 있다고 한다.

 

첫번째로 간 곳이 ‘시토로이 모이 호사’ (Sitorai Mokhi Khosa)이었다. ‘해와 달이 있는 곳 ‘이란 뜻의 왕의 여름 궁전이다.  페르시아의 유전인자를 가진 이란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인지 여지껏 보아온 건축물 중에서 가장 섬세하고, 멋이 났다. 그 다음 들린 곳이  ‘이스마일 사마니 (Ismail Samani) 묘 이었다. 이스람 교를 전파한 기념으로 그의 묘를 지었다하나 당시의 대중의 입맛에 맞게 하느라고 조르아스타교 풍이라고 하는데 전문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모양이 좀 남 다르다는 것이 내가 느낀 전부이다.

 

이어서 부하라 왕이 거처하는 아크 성(Ark Fortress) 과 부하라의 중심지인 포이-카론 (Poi-Kalon)에 칼란 미나렛과 모스크를 찾았다. 사마리칸트의 미나렛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는 이 미나렛의 높이는 46 미터로 1127 년에 지었다 한다. 그리고 끝으로 노들데반데베기 마드레세(nadir Divan Begi) 신학교에 갔는데 그곳에서 유물 유적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그곳이 식당으로 변해서 저녁을 먹으로 간 것이다. 그리고 만일 하늘에서 모하멭이 이곳을 내려다 보았다면 놀라 자빠질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저녁을 먹으면서 패션쇼를 하는 것을 보았다는 사실이다. 나야 그저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여러 가지 의상을 이고 걸어 다니는 것을 즐겼지만 글세……코란 을 암송하던 모하메드가 이 광경을 어찌 생각 할 것인지…

 

나는 이제 부하라를 떠나서 장장 7시간 버스를 타고 히바(Khiva)로 가고 있다. 눈을 감고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이제 우즈벡 사람들의 오늘의 모습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우선 좀 혼란스럽다. 간판이 러시아의 키릴 문자와 영어가 뒤섞여 있어, 하다못해 지명을 영어식으로 읽는 것과 전혀 다르다.  한 호텔에서 자던 날 이다. 정원에서 생일 파티가 열렸는데 노래가 러시아 민요 백만송이의 백합 이 들리는가 하면, 미국 포크 송이 들리고, 영어 해피 버스데이가 들린다.

 

아니 그것보다 우리가 보는 거의 다가 이스람 문화 유적이다. 그런데 머리에 히잡 하는 여자들이 소수이다. 그리고 호텔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식당에서도 소위 이스람교인들이 먹는 하랄 식품이 아니고, 쇠고기 옆에 돼지고기 소세지도 놓여 있다. 미라넷에서 코란 외우며 기도 하는 것도 물론 없다. 국가에서 종교의 자유를 국가 원칙으로 한다해도 이 오랜 전통의 이스람교가 관심 밖인 듯 하다.

 

혼자 생각해 본다. 역사를 살펴 보건대 족장 시대를 지나, 추장 시대가 거쳐, 국가가 탄생한다. 그런데 지역 특성상 파밀 고원의 꼭대기 설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의 오아시스 이라는 한정된 곳에서 세워진 이곳 국가들은 작은 도시국가로서 실크 로드의 거점 도시로 존재가치가 있었지만 그 이상 클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예외적으로 티무르 대제가 통치가 아니라 정복으로 한때 넓은 영토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역사상 포트칼의 앤리케 왕자가 15 세기에 등장한다.  아프리카를 돌아 아세아로 향하는 항해가 시작 되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여 낙타 1000 마리에 실릴 물건을 배 한 척이 실려 나를 수 있게 됐고, 1 -2 년 걸리던 기간을 단 몇 달로 수송이 가능해 졌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실크 로드는 사라졌고, 16 세기 이후 동서양 모두에게서 잊혀진 곳이 되어 버렸다.

 

16 세기경 지금 우즈베키스탄 북족에 투르크족의 한 집단에 지도자 우즈벡 칸이 등장한다. 그가 현재 우즈벡의 수도인 타슈켄트로 내려와서 지배를 시작 했다. 서방 사람들은 그저 우즈벡이 지배하는 곳이라 불렀고,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이 되었다. 그러다가 19 세기 말에 러시아에 합병 당했고, 나중에 소비엣트 연방의 하나가 되었지만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도 희미해진 가난하고 힘 없는 나라로 남아있다. 이것이 내가 우즈벡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다.

 

그래서 우즈벡 사람들은 먼 곳을 그리워하며 동경한다. 또 수천년 내려오면서 찾아오는 카라반이란 사람들 덕분에   먹고 살았다. 이러한 DNA 를 가졌기에 한국에 가서 일 하기가 꿈이요, 한국 사람과 결혼 하는 것도 영광이다.  물론 사진도 같이 찍기를 바란다.

 

그런데 하늘은 그들에게 또 한번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이 우즈벡을 하늘의 실크 로드의 거점으로 만들고 있다. 중국이 낙타가 아니라 철마로 실크 로드를 만들겠다고 철로를 깔것 같다. 아니 그것보다도 천연 까스 등 풍부한 지하 자원이 우즈벡의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

 

다음번 언제인가 내가 우즈벡을 다시 찾았을때에는 천진하고, 사진 같이 찍기 좋아하던 아가씨들이 성숙하고 멋진 여인들로 나를 맞이 할것이라 나는 믿는다. 이런 즐거운 생각에 젖어 있는사이에 버스는 벌써 히바에 도착하고 있었다. 내일 히바에서의 일정이 시작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