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기 (1/19 ~ 1/29/2015)

김용두 | 2/11/2015


        시카고- 김용두

오랫동안 기다렸던 인도 여행 이다.  여행이 확정이 되고 나서도 아내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눈치다.   인도까지의 비행시간, 여행동안 입을 , 현지의 위생문제, 나라음식, 잠자리, 공중 화장실 시설, 여행코스의 구간을 기차로 여행하는 등등, 없는 들이 너무 많은 이유였는데 그러나 10년넘게 인도여행을 미루며 계획했던 나로서는, 아내가 내키지 않는 여행이라 해도 계획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6.25 동란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파병했던 나라, 세계 문명 발상지 중의 하나인 인더스 강이 흐르고 (현재는 파키스탄 안에서 흐른다), 일곱 명의 노벨상수상자를 배출한 나라, , 원자탄을 보유할 만큼 과학이 진보한 나라, 미국의 국토넓이의 사분의 정도이나 인구는 미국의 3배나 되는 나라, 차량의 좌측 통행인 나라등 틀어 17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인도라는 나라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121-22  Delhi 에서   

인도의 수도, Delhi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별로 까다롭지 않은 입국 수속을 마치고 찾아 밖에 나오니, “한스 여행이라는 작은 푯말 (Placard) 들고 서있는 인도 청년을 쉽게 있었다.   공항을 나오면서 주위에 혹시나 하고 한국 선전 광고 (삼성, LG, 현대 자동차등) 있나 하고  두리번거렸으나, 상품 선전 광고는 전연 없는 비행장 밖의 환경이다.  공항내부에 버스를 새울수 없는 이유로 우리가 버스는 밖에 주차 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짐을 풀기 위해, 곧장 호텔로 향했다.  차량은 좌측 통행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호텔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수색, 몸수색을 받고 통과를 해야 하니 말이다.  파키스탄과의 갈등으로 인도에 머무는 동안 9 밤을  호텔에서 묶었는데 어느  호텔이든  똑같이 검색이 삼엄하다.  그러나 일단 검색을 마치고 호텔 Lobby 들어가면 우리를 맞는 호텔 직원이 손을 합장하고나마스데 (안녕하세요)” 라고 얼마나  공손히 대접해 주는지 민망할 정도다.   호텔은  규모가 아주 크다.   짐도  porter 시켜 방에 까지 가져다 주는것 으로 여행사에서 미리 신청해 놓았고  우리는 편하게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처음보는 낯선 수많은 음식들,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하는지 없다. 설마 먹고 배탈은 나지 않겠지??  망설여진다.  가이드의 익살,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을 생각하며,  buffet 테이블을 돌아 보니,  안남미로 지은 밥이 있고 옆에 양념을 넣고 만든 볶음밥이 있어  두어 주걱씩 퍼서 위에 노란색 카레 요리를 밥위에 올려 먹으니, 시장이 반찬이라 먹을만 하다.  카레 Rice 아침으로 먹다니식당 종업원들이 너무 친절하다. 귀찮을 정도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고 수시로 와서 묻는다.

아침 먹고 나서 곧장 델리 시가지 관광에 나섰다. 한국사람 못지않게 한국말을 잘하는 현지 가이드의 익살로 피곤한 것도 모르고 버스로 새도 없이 Delhi 시내를 돌아 보았다. 
교통 법규가 있을텐데  멋대로 운전하는 차량, 어디를 가나 교통 체증이다. 소리가 그칠 없고, 앞질러 가려고 머리를 들이대는 모습, 이곳의 교통 무질서는 금메달 (medal) 권에 정도다.

소형차, 크고 작은 트럭, 버스, 모터사이클, auto 릭샤 (릭샤는 인력거라는 일본말 발음에서자를 빼고), 자전거,  그뿐 아니라  어느 거리에는 , 돼지, 개들이 두세 마리 떼를 지어 차도를 유유히 다니는데  아무도 짐승들한테   소리 내는 운전사 없이 마치 서커스의 곡예사들처럼 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버스 속에서 내다보니 아슬아슬한 장면의 연속이다. 

조사, 조사 받은 신발 벗고 들어가야 하는 Muslim 사원인  Jama Masjid,
6.25
직후 우리나라 시장골목을 연상케 하는 Old Delhi 거리, 머리에 두건 쓰고 맨발로 들어가야 하는 Sheik 사원 (Gurudwara Bangla Sahib), 발치로 바라보았던 정부 청사, 인도의 (India Gate) 돌아보고, Mughul 점심을 먹어보았다. 인도 음식하고 무굴식이 어떻게 틀린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점심 인도수상인 Indra Ghandi 화장터 (Raj Ghat), 그곳에는 화장하기 시체를 올려놓았다는 대리석만 남아있다. 

인도에서 첫째 날을 분주하게 보내고 호텔로  돌아 왔다. 생각보다 좋은 호텔이다.   친절한 종업원,  넓고 시설이 좋은 안락한 객실,  방마다 “Samsung” plat TV  놓여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많이 발전되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하다.  아내가 이번 여행을 망설였던 몇가지 불안 요소들이 여행 첫날에 해결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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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3 Jaipur 에서 

Jaipur 가는 날이다.  미리 보았던 일기 예보가 들어 맞아 날이 흐리고 비가 올듯하다.  아침은 호텔에서 Sandwich 해결하고  이른 아침 비행기 타러 Dehli비행장을 향해 떠났다. 국내선 대합실은 여행하는 사람으로 가득 있었다.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는데 부슬비가 나리기 시작했다.  행선지 Jaipur 기후로 인하여 (비가 몹시 내림) 착륙이 위험하다는 핑계로 비행기 스케줄이 취소되어 다시 비행기에서 내려 대합실로 돌아가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렸다.    우여곡절 끝에 오후 늦게야 Jaipur 도착, Pink City 라고 불리는,  전체가 pink 색깔로 도시를 구경하러 갔다.    고장에 Sandstone (沙石) 많이 나는 모양이다. 보이는 것이 오직 Pink 색깔 뿐이다. Hawa Palace (일명 바람 궁전) pink색갈이라기보다  빨간색이다.  건물정면은 많은 작은 문으로 되어 있어 안에 사는 여자들이 더운 여름에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나서 양털로Carpet 짜는 곳을 돌아보고  Marriott hotel 첵인하니 오늘 일정이 끝이 났다.   호텔 규모가 아주 크고  부페  음식 종류도 엄청나게  많다.   부페 테이블을 돌아 보니 Delhi 에서 묵었던  호텔 식사만큼 종류가 많고 비슷하다.   


Pink City
기록를 찾아 보니 1800 영국의 Victoria 여왕이 아들을 데리고 자이푸르를 방문했을 환영의 뜻을 표하기 위해 도시를 Pink색으로 칠한 부터 Pink City  불리며 아직도 pink 전통을 계속 지켜가고 있다고 한다.  Pink City 양쪽 길가에있는 상점들과  장보러 와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 관광객들, , , 돼지자동차, 모터사이클, 빵빵대고 들이대는 모습은 Old Delhi 거리나 별로 다를 없었다. 다음날 아침, 왕이 살던 Amer (일명 Amber ) 관광했다. 코끼리 타고 가려던 계획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관계로  Jeep 차로 대신 올라 갔다가 왔다.

오후에는 Jantar Mantar 라고 불리는 천문대에 가서 여러 가지 천문학에 필요한 기구들을 관람했다.  영어로 하면, Architectural Observatory Instruments   라고 표현할수 있을것 같은데 18세기에 이곳을 지배하던 Jai Singh II 왕에 의해 건축되었다는데 지금도 천문학을 연구하는 학생들이 와서 공부하러 온다고 한다. 신라시대 지은 첨성대가 있다고  가이드 한테 말할까 하다 참았다.   첨성대는 이곳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123- 25 Agra 에서
당시의 왕과 가족들의 입던 , 보석, 가구, 무기 등등을 보관하고 있는 Albert 박물관을 돌아보고 나서 Agra 향해 출발했다. 가는 도중,  내일 Agra기후가 좋지 않다고 가이드가 미리 알려 주면서   오는 Agra비아그라라고 부른다는 가이드의 익살스런 농담으로  Taj Mahal 구경할 날의 기후 예보와는 상관없이 버스 안이 온통 웃음바다로 변했다

Agra 가는 길에  Abaneri 라는 작은 마을에 가서 8세기에 만든 아바네리 쿤다 (Chand Baori - Pyramid 꺼꾸로 세워놓은 모양의 우물) 보았다. 빗물을 받아 보관 했던, 일종의 저수지로 사용했던 곳이었다 보다.  깊이가 100 미터나 된다고 한다.  그당시 순전히 사람 손으로 땅을 팠을 텐데 생각하니 당시 백성들의 고생을 짐작할만하다.
좀더 가다가 근처에 있는 Sikiri 라는 고장에 있는 Fetehpur성에 들렸다.  지금까지 둘러본 (왕들이 살던 )  Delhi Jaipur, 그리고 Sikir, 곳을 보았다.  어쩌면 한결같이 Pink , Sandstone 재료로 써서 막대한 성과 부속 건물들을 지었는지? 건축 모양새가 Islam 식에 Hindu식을 가미 한것 같은 표적이 여러 군데에서 있는 것도 특이하다.  Islam 믿는 왕이 Hindu 사람들을 포용하려는 정책이였을 것이다. 늦은 저녁에 Agra에도착했다
.  
내일 Tj Mahal 앞에 가서 실물을 생각을 하니 잠이 쉽게 오지 않는다.  날씨가 좋기를 바랄 뿐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밖을 내다보니 안개가 자욱하다. 10여년을 벼르다 것이 안개 날을 골라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오후에 안개가 게이고 타지마할을   있게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품고  Agra 성을 오전에 먼저 보러 간다 해서 따라 나섰다.  Agra 역시 Pink Sandstone 으로 왕궁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곳이 왕궁으로 사용된 것은 10세기경 부터이고  세월이 지나면서 왕조가 많이 바뀌어 오다가 18세기에 와서 Mugul Shah Jahan 왕이 나라를 평정하고 오래 통치하는 동안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37 젊은 나이에 죽은 아내를 추모하려고 만든 Taj Mahal 완공한 , 자리를 물려받은 아들이 Taj Mahal공사로 나라의 재정을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그곳 왕궁 한구석에  감금하여 그곳에서 살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감금 되었던 방에서 보니 안개 속으로  멀리 희미하게 타지마할이 보인다. 안개가 빨리 없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성안을 돌아 보았다.  Taj Mahal 바로 북쪽에는 Yumana 강이 흐르고 있다.  Shah Jahan 왕은 사원을 완공하고 후에 하나의 같은 사원을, 건너 북쪽에 까만 대리석으로 지으려는 계획이 있었다는데 어찌하다 아들이 정권을 잡고 Agra 성에 감금 되는  바람에 이루지 못했고, 지금도 Google Map으로 보면 정원을 만들려 계획이 보인다.   

다행이 오후에 안개가  많이 게여서 점심 식사후 Taj Mahal 보러 갔다.  버스는 주차장에 두고 Shuttle 작은 차를 타고 앞에 도착, security 검사를 받은 Taj Mahal 성안으로 입장했다.  !  탄성의 소리 연발!   그림에서 보던 Taj Mahal 앞에  나와 인도여행을 꺼려하던 아내가 빙그레 웃으면서 서있고  관광하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아침에 안개 때문에 관광객이 오후에 몰려와서 분비는 이유이다.    

왕비와 왕의 유해를 보관한 성안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뻗어 있는데 고맙게도 외국 관광객들은 서지 않고 곧바로 입장이 허용되었다.  Mausoleum 속은 조명 장치도 별로 없이 캄캄해서 보이는 것은 별로 없고  돌로 개가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감금 생활하다 죽은 왕의 유해를 아들이 이곳으로 옮겨와 아내 옆에 관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실제의 유해는 지하실에 묻혀 있고 위에 전시한  두개의 관은 관광객들이게 보이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번째 아이 출산 세상을 떠난 아내 Mumtaj Mahal 추모하려고 지은 ( ) 이다.  완공 500 가까이 되었어도 저렇게 아름답게 버티고 있다.  설계한 사람도 뛰어난 재주꾼이요, 현대식 건축장비는 꿈도 꾸지 못할 당시  어떻게 이렇게 웅장한 건물을 만들 있었단 말인가?  쉬운 답이 없다.  여러 분야의 기술자 2 여명이 22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대리석 만으로 지은 건물이라 한다. 

기록에 의하면, 2008년에 방문객이 250만명이였고, 외국인 방문객이 6 백만 이였다고 한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많이 와도 수용하기 어려울 같다.

구경을 끝내고 “Taj Mahal 있기까지 (실제 제목과 관계 없이 지은 제목)” 라는 Musical 졸면서 보고  호텔로 돌아와 저녁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123- 26  Khajuraho 에서

오늘은 기차 타고 Jhansi 가서 Orcha를거처 나체조각으로 온통 뒤덮인 사원이 있다는 Khajuraho 가는 날이다. 그러나 기차가 연착한다는 소식인데 인도에서   2~3시간 기차 연착은 성적이 좋은 편이라니 어처구니 없다. 오직 인도에서만 있을 일이다.   대합실은 남자 대합실 여자 대합실로 구분 되여 있는데 남자들은 여자 대합실에 들어 갈수가 없게 되어 있지만  여자들은 남자쪽 대합실에 마음대로 들어가도 다고 하니 그야 말로 Lady First이다.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볼만하다. 신문 보는 사람, Apple Laptop 가지고 분주히 두드리는 사람, Samsung Smart phone battery charge하는사람, 가족이 어딘가를 가는 모양인데 가지고 밥을 기차역에서 나누어 먹는 사람들, 골며 자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 등등…6.25 사변 직후 우리나라 기차 정거장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드디어 두어 시간 연착한 기차가 왔다.  좌석표를 구입하였으니 별문제가 없이 자리 찾아 앉았다.  비교적 깨끗하다.  짐은 가이드가 짐꾼을 사서 들고 가도록 처리했으니 때문에 걱정할 것은 없었다.  기차 요금 속에 , 음료수 하나가 포함 되어 배당이 왔다.  가이드가 농담조로 변비 있는 사람에게 좋은 (아무나 주는 물을 마시면 설사한다)” 생각이 나서 그런지  마시는 사람 별로 없는 …. 시간을 조금 넘어서 부슬비가 내리는Jhansi 도착, 버스로 Orcha 라는 마을로가 점심 먹으려고 식당에 들렸다. 부슬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고  Jahangri 사원을 비속에 보았는데 지금은 낡은 건물로 Pink 색이 너무 낡아 버렸고 이끼가 끼어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아까운 사원이 관리가 부실한 이겠지.  오후 늦게 구경을 끝내고 Khajuraho 향해서 떠나는데 어둡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보니 이게 웬일? 길가에서 용변 보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Delhi 에서도   낮에 길가에 버젓이 서서 용변 보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 생각난다.  늦게 호텔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식사후 10세기경에 세워진Erotic 사원을 보러 갔다.  인도 말로는 Lackshmana Temple 알려져 있다, Erotic 영어 단어 뜻은성적 욕망이나 감정 자극하는 데가 있다라고 풀이할 있다.  남녀 나체의 조각, 남녀가 성교하는 조각이 수도 없이 많이 사원 벽에 세겨져 있다.  사원을 짓고 조각을 만들어 사원 벽에다 붙인 것인지, 혹은 조각을 만들고 나서 어데다 붙일까 생각하다 사원 벽에 붙인 것인지 알쏭달쏭 하다. 여하튼   나체조각을 사원 벽에다 붙여야 했나 궁금했는데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당시 형편으로는 불교가 성행해 많은 남자들이 스님이 되고 전쟁에 나가 죽는 남자가 많아지니 인구를 증가 시키기 위해서 일부 다처의 사회 분위기 조성의 수단으로  에로틱 사원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일까?  3 비행기로 Varanasi 가야 해서 구경 마치고 Hotel 와서 점심 비행장으로 차비를 차리는데, 비행기가 Varanasi에서 와서 손님을 태우고 다시 Varanasi 가게 되어 있는데 비행기가 언제 올지 오리무중 이란다.  해가 지고 캄캄한 밤에, Varanasi 도착해서 Hotel 들었다.  그런데 호텔이 참으로 좋아 보인다.  음식도 다양하고, Wi-Fi 연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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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8 Varanasi 에서

아침 일찍 갠지스 강으로 새벽 모습을 보기 위해 출발했다.  가는 길거리 상점건물 처마 밑에 즐비하게 노숙자들이 자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날이 흐려 뜨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에서 목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빨래하는 아낙네도 보인다.  두군데 화장터에서 시체를 태우는 것이 보인다. 이게 웬일인가?  시체는 장작불에 타고 있는데, 옆에 소가 마리 누워있다.  

다시 호텔에 돌아와 아침을 먹고 곧장 Sanarth 라는 바로 가까이 위치한녹야원 (鹿野苑)” 가서 박물관을 둘러보고  부처님이 처음으로 도를 트고 제자들을 가리키기 시작했다는 장소를 기념 하기 위해 만든 43 meter 높은, 벽돌로 만든 (Dhamek Stupa)   사슴 농장(?) 둘러보고  호텔로 왔다.

저녁 먹고  희망자들만 릭샤를 타고 간지스 강가의 야경을 보러 갔다.  아내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방에서 쉬기로 해서 혼자 나섰다.  오늘 저녁에 Hindu 예식이 있나 보다.  불이 환하게 켜있고 사람들이 아침보다 많다.  아침에 같은 작은 Boat 타고 화장터(Ghat) 있는 가까이로 갔다. 장작불이 환하게 타오르고 시신들이 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유가족 인듯한 사람들이 시신을 둘러싸고 옹기 종기 있는데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내가 릭샤 운전사는 40 중반으로  보이는데 가볍지 않은 나하고   무게와 비슷할 만한 가이드,  둘을 태우고 45 분쯤 달려 갠지스로 갔다 왔다 하는 모습.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뒤에 앉아서 타고 가자니 불안하고 안쓰럽기 그지없다.   애쓰며 릭샤 몰고 가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128-  129  Delhi 에서  

비행기로 Delhi 가는 날인데  비행기가 거의 정시에 출발, 도착했다.  점심 먹고 73 미터 높이의Qutb Minar (쿠트브 ) 보러 갔다.  11세기경 Hindu 왕국을 무너트린 회교도 왕이 전승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은 이란다.  Sandstone 하고 대리석으로 탑이다.

마지막으로 Lotus Temple ( 사원) 보았다. 연꽃 모양을 따서 지었다 해서 연꽃 사원이라고 불린다고 하니  이보다 적합한 명칭이 있겠는가?  무슨 종교를 믿던지 여기 와서 소원을 비는 기도를 드릴 있다고 한다.  Rush hours 되었는지 차가 많이 밀린다.

Delhi 시내 한복판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오랜만에 김치를 먹을 있었고 소주도 한잔 했다.  내일 비행기 타고 집에 가는 일만 남았다.

여섯 명의 장님이 동물원에 가서 코끼리를 보고 와서 서로 틀린 이야기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나는 코끼리의 어디를 만져보고 글을 썼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