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룩스 3국과 노르망디 여행

이영묵 | 6/17/2014

                                                  베네룩스 3 국과 노르망디 여행

 

                                                         

                                                            1 화 네델란드에서

 


나라 이름인 네델란드라는 의미는 바다보다 낮은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와는 인연이 있는 나라이다. 빠껬츠,샤봉(비누) 같은 서양의 말이 처음으로 이 땅에 소개된 것이 네델란드 말이다. 일본에 첫 무역 상대가 그들이었기에 임진왜난 때 이 땅에 소개된 단어들이다. 또한 인조 때 귀화한 박연이니, 하멜 표류기를 쓴 그들도 네델란드인이다
땅덩어리라고 해야 경상남북도 합친 크기이고 현재 인구가 1,600 만 명이라고 하니 500 년 전에는 아마도 1,000 만 정도도 안 될 상 싶은데 어떻게 해서 동인도 회사라는 사실상의 군대 조직을 만들어 인도네시아 전역을 지배하고 풍랑이라 하지만 한국 땅까지 오기도 하고, 아프리카 남아공의 실질주인이 되고, 미국 뉴욕(뉴 암스델담)에 첫 번째로 땅을 갖는 등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이 나의 질문은 몇 시간도 흐르지 않아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공항에 내려서 각지에서 거의 비슷한 시간대의 일행을 기다리느라고 대합실 구석진 의자에 모여 앉아 있는데 그곳에 대 여섯 명의 홈레스 들이 아침 시간이었건만 누어있어서 첫 인상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이었고 우리는 좀 피곤 했으나 아침 산책을 하는 기분으로 그 유명한 유럽의 봄을 알리는 튜립 꽂의 축제가 열리는 큐케호프(Keukenhof) 공원으로 갔었고. 그리고 그때부터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 했다
나는 사실 꽃을 즐기기보다 직사각형으로 된 꽃밭을 보면서 내가 공항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비록 버스 차창으로 내다본 것이었지만 모든 것들이 매우 인상적인 것들이 떠올랐다. 우선 모든 것이 너무나 직선이었다는 것이었다. 집 건물자체는 물론 어테치되어 있는 데코레숀, 운하와 뚝, , (나중에 호텔에서도 건물은 물론 내부 디자인까지도 직선) 모든 것이 직선이었다는 말이다. 지붕 기와 처마의 곡선, 한복 저고리 소매의 곡선, 허다 못해 부체문양의 곡선의 문양 같은 우리 (곡선의 미) 와는 너무나 달랐다.
다음은 이곳의 교통수단을 보니 자가용, 전차, 운하를 다니는 배 등이 있었으나 그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전용도로위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숫자가 제일 많아 보인점이 었다. 그것도 정장에 가까운 옷차림의 부인까지도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돈의 문제도 아니고, 한국식 체면의 문제도 더 더욱 아닌 듯 했다. 오로지 실리와 능률의 관점에서 자전거를 선택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기분 좋게 하는 것은 자기 일에 충실하며 체면이나 남을 그렇게 의식하지 않는 것이었다. 점심은 그 공원 식당에서 먹었다. 매뉴라는 것이 밀, 보리, 귀리 등 여러 다른 곡물들로 된 다섯 가지 이상의 빵과 여러 가지의 치즈, 그리고 햄 종류이었다. 그것도 큰 바구니로 써브하고 나누어 먹으라고 하면서 말이다. 허식이 없는 이 소박한 점심 그것은 나에는 만찬 이었다
나의 테이블에 가이드가 앉았다. 어쩐지 프로 냄새가 안 난다. 설명을 슬그머니 유도 해 보았다. 이곳 네델란드는 다른 유럽 관광지처럼 국가가 인증한 가이드를 꼭 써야 한다는 등의 규제가 없고 가이드의 라이선스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다. 관광 볼거리가 없어서 인가? 아니면 그러한 가이드 자체가 꼭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아서 인가? 하지만 나는 꾸며진 무대 같은 일정 코스를 앵무새 같은 가이드를 통한 관광보다 좀 더 그들의 삶의 진면목을 볼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제 유럽인의 진짜 생활 속으로 잠시나마 들어 갈수 있을까 하며 말이다
2 일간 관광에서 과거의 유적을 즐겨 찾는 나에게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만한 것은 없었다. 본래 네델란드는 7 개의 지방정권의 연합이라 7 개의 문이 있는 종합청사, 왕궁 ,그리고 왕국 의전의 교회 등을 보았으나 호화로운 것이 아니라 그저 쓸 만한 만큼의 크기이었다. 생각건대 이 나라가 1568 년부터 스페인으로부터 80 년간 독립전쟁,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1651 년부터 영국과의 해양 주도권 전쟁, 1795 년 프랑스와의 전쟁을 치른 국가의 규모로는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는 고호 미술 박물관, 하이네켄 양조장, 그리고 그들의 솔직함의 표현이라고 생각되는 ‘뻐젓이 공개하고 있는 홍등가’를 구경하고, 국제 사법 재판소 같은 여러 개의 세계 기구들이 모여 있는 해이그로 향하면서 혼자 생각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었고, 네델란드인들은 네델란드를 만들었다’ 라고 말들을 하는데, 이는 모든 문제를 현실로 직시하는 직선을 선호하는 성격, 그 기다란 해변에 몇 백 년이고 물 한번 새지 않는 철저한 공사로 해면위로 뚝을 쌓아 네델란드를 만드는 그 철저함, 자전거를 아무런 장애 없이 누구나 타는 공리주의와 평등주의, 그리고 밖으로 뻗어 나가려는 해외지향주의가 오늘에 국민소득 4 만 불이 훨씬 넘는 나라고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의 한국 실정을 보건데 한국은 네델란드에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 낼 수가 없다. 몇 백 년이고 사고 없이 지탱하는 바다의 뚝을 쌓은 그들은 아마도 세월호, 삼풍 백화점 참사, 성수교 다리 붕괴 같은 것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유럽의 모든 꽃들은 일단 암스텔담에서 사고판다. 꽃의 신선도를 지키는 것은 보관과 운송기간 중에 직면하는 찰라에 기온 변화를 방지 하는데 승부를 건다고 하는데 그 철저함은 네델란드인이 최고라 한다. 그래서 한국 꽃도 이곳을 통해서만 팔릴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삼성전자 우리의 자랑이다, 그러나 Sony 같이 혹시 그리고 언제 복병을 만날지 모른다는 불행에 대비를 해야 한다. 그 해답은 하이네켄 맥주와 셀 석유에서 찾아야 한다. 석유 한 방울도 안 나는 나라이다 그냥 석유는 석유일 뿐이다, 그리고 유럽에 가면 하이네켄 보다 더 맛있는 맥주들 참 많다. 그러나 두 회사는 철옹성이다 왜 그렇게 지탱할 수 있을까 이것을 배워야 한다.
그 뿐인가 유럽에서 화물선 취급 물동량이 일등이고 암스델담을 기지로 한 KLM 항공 역시 전 세계계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속된말로 멋대가리 없어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최고 80 % 까지 의 세금도 마다하지 않고 내면서 생활 만족도 86 % 라는 입헌 군주국인 이 나라이다. 한국은 그 국민들의 탄탄한 경제 구조,시장 점유 등의 지혜 역시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헤이그에 이준 열사 기념관으로 가면서 버스에서 세월호 침몰 장면, 탈출하는 선장 모습을 생각하면서 혼자 흥분하고 있었다.
낙수 (落穗)
저녁 예약시간 그리고 호텔 첵크 때문에 이준 열사 기념관은 앞에서 사진만 찍고 빨리 만국 평화회의가 열렸던 소위 ‘기사의 방’으로 가자고 했는데 그만 기념관 소장님에게 잡혀서 그 분의 1 시간 반의 걸친 열변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그 회의 장소를 못 갔다. 사실 1907 년 당시 이준 열사는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앞에서 기자들에게 하소연 하는 것이 전부이었다. 그로부터 105 년 뒤 우리나라 송상현 이란 분이 ‘국제 형사 재판소 소장’ 으로 바로 그 장소에서 취임식을 거행했다. 꼭 가고 싶었는데 아쉽다

 

                                                          제 2 화 벨지움에서

 

우리의버스는독일에서다시모젤강을끼고벨지움으로향하였다.차안에서벨지움의간략한안내서를보니총면적이 3 만평방km 이니한반도의약 1/7 정도로네델란드보다더작은나라이었다. 이곳역시네델란드처럼입헌군주국이다. 인구는천만정도이고국민소득은역시 4 만불이넘어한국보다더잘산다. 그러면서나포레옹의꿈이끝나는전쟁터워터루남쪽은프랑스어, 북쪽은네델란드어를사용한다.
나는작년에아프리카사파리를다녀온적이있다. 그런데아프리카케냐를가는데이곳벨지움에서부뤼셀에어라인으로갈아타고갔었다. 아프리카전역을부뤼셀에어라인이연결하고있다는말이다. 그런데다시알아보니부뤼셀에서는전유럽으로연결하는기차연결의허브역할도하고있다한다. 이작은나라와네델란드가철도, 해운, 항공의중심이라니참으로대단한것같다.

그러다가작년캐냐가는부뤼셀에어라인비행기에서흑인손님에게써비스를하던미녀스튜어디스를상상하며‘너의조상이지금의너를보면어떠했을까’하며쓴웃음을짓던것이생각난다. 사실벨지움이과거아프리카에서저지른악행(?)은유별났다.

유럽이아프리카를이리저리갈기갈기찢어서식민화했을때막차를탄나라가네델란드, 벨지움이었다. 그런데두나라사람들의정책이특이했다.현재의남아공에정착한네델란드인들은‘이땅이신이우리에게살라는땅이다’하면서본국과의관계없이흑인노동착취로그들의번영을구가했다.
그러나벨지움은레오폴 2 세가‘중앙아프리카에문명의깃발을꽂기위해서’라며 1876 년콩고공화국설립을선포한다. 그리고그침략와중에 1000 만명의원주민을학살한다. 이세기가놀란사건으로독일의비스마크가식민통치의룰(RULE)을정하자며유럽의식민지를가진모든국가를소집하여회의를한다.

‘룰이라는질서’라는것이종족, 언어, 지리적그어느것도관계없이그저직선으로금을그어나누어가진것이고, 더욱인류역사상부끄럽게도합의한것이당시첨단의신무기즉일초에 11 발을발사할수있는기관총은아프리카인에게는팔지않는다는내용이었다. 그들모든유럽나라들은그기관총으로아프리카인들을학살하면서말이다

벨지움은작은나라이고적은인구이라공포의정치가아니면식민통치가가능하지않았기때문이아닐까생각된다. 현재까지레오폴 2 세는벨지움에서위대한왕으로추앙을받고있으나벨지움의식민지이었던콩고와르완다에서현재까지도진행되고있는종족간에대학살내전은그들이남긴비극의씨앗인지도모르겠다.

그래도긍정적인유산은남아있다. 초콜렛이다. 아프리카식민지에서생산되는코코아를원료로하여초콜렛을만들기시작했다.그리고범국가적인차원에서품질관리에정성을드려세계적인브랜드를만들었다. 고디바(Godiva) 초콜렛만이아니다. 초콜렛포장에메이드인벨지움이라고쓰여있으면세계가알아준다. 한국의롯데를비롯한몇개의회사가아예이곳에공장을차렸다한다.

버스는어느덧부뤼셀에도착하였다. 베네룩스 3 국은여느나라들이플라자라고부르는것과달리마켓플레이스(Market Place)’ 라고부르는곳으로향했다. 먼저동상하나가우리를반긴다. 세르반테스소설의주인공‘돈키호테와산쵸’이다한때스페인식민지이었던잔재다.다시유명하다는작가, 그리고오늘의부뤼셀을이르게한시장동상들이있었는데영어설명이없으니그나라글을못읽어누구가누구인지모르겠다.

드디어마켓플레이스에도착했다. 레미제라블(장발잔) 의작가빅토르위고가극찬했다는대마켓플레이스이다.과연아름다웠다. 시청 ,왕궁(스페인총독관저인데나중에그가왕이되어왕궁이라부른다), 상업대연합길드하우스등이멋이있었고유럽최초로지붕이있는아케이드, 그리고바로뒤에먹자골목또한흥미로웠다. 물론그곳에서해산물점심을먹었기때문이기도했지만말이다.

그러나부뤼셀에서가장기억에남는것은오줌싸게소년동상이었다. 세계에이름값을못하는동상이 3 개있다고들한다. 덴마크의인어공주상, 독일의로레라이, 그리고이오줌싸게동상이다. 크기가잘해야 60-70 센티정도그저말그대로오줌싸는아이의모습이다. 옛날어느귀족이축제에외동아들을데리고나왔다가아이를잊어서며칠을울며찾았는데이곳샘터에서찾았기때문에세운동상이라한다.너무고마운마음으로이동상을세웠다라고이야기도하고, 혹자는이부뤼셀이외침을받았는데프라방드백작의아들이적군을놀리는듯앞에서오줌을싸면서군사들의용기를북돋아주었다는것을동상으로재표현했다는말도있다. 그런데오늘은옷이입혀져있었는데그것이부뤼셀축구팀유니폼이란다.이곳벨지움역시축구사랑이거의광적이고지금 FIFA 랭킹 11 위이다그리고이팀이브라질월드컵에서우리와같은조이다. 어찌좀떨린다.

우리는이곳을떠나한국으로치면경주쯤이되는북부의베니스라는브뤼헤(Brugge)에들렸다. 그러나부뤼셀부터내리던비가센바람과함께억수처럼내렸다. 그래서그유명하다는운화와옛정취의산책을하지못함을아쉬었다. 그저그곳의마켓플레이스에서길드의동상, 버건디공작이지은판사들의모임과 366 계단의전망탑이있는건물, 발드윈백작이지은시청, 그리고십자군에참가하여예루살렘에서가져온예수의피흔적(Holy Blood)이보관되고있다는성당(Holy Blood성당) 을밖에서보는것으로만족해야했다.

내일부터는프랑스의노르망디지역으로간다. 지치고흠뻑젖은몸으로호텔에오자마자깊은잠에빠졌다.

                                                         

                                                          3 화노르망디역사

 

베네룩스 3 국의여행을끝내고이제프랑스노르망디로향하고있다. 우리는처음부터한버스로베네룩스 3 국과노르망디를다니는것으로계획했고, 그버스를보니체코나라의번호판이자체코운전수이였다. 물론오늘날의 GPS 도있겠으나, 그는관광버스운전경력이 25년이라운전도편안했고영어도능숙했다.

노르망디까지는아침일찍떠나서점심때까지 4 시간은족히가야하는거리이었다.  한스여행사의인솔자‘조앤’이나보고노르망디에대해서좀조사해서역사적배경을이야기해달라는주문이있어준비한자료로대충설명을하였다. 그내용을간략하게소개한다.

첫째그들지금의노르웨이지역출신인,그리고바이킹이라고도알려진노르망디족의역사등장은 9 세기초유럽의프랑스지역에쳐들어와서해적질하는것이었다. 그런데각제후들은이들을쳐부시지않고용병으로쓰기도했다. 그러다가그들의힘이세어지자프랑스의샤롤 3 세가회유책으로우두머리‘롤로’를노르망디공작으로임명하면서노르망디땅의지배를인정하게된다. 그후윌리암 1 세가영국으로쳐들어가영국왕이되니그는노르망디공작이자영국의왕이된다.

두번째등장은1200 년초에 3 차십자군을이끈사자왕리차드때를전후해서이다. 1145 년십자군 2 차원정은프랑스루이 7 세가이끌고갔으나셀쭉터어키술탄살라딘과단한번의싸움에패하고프랑스로돌아온다. 이에실망한부인이자알레오르노공작상속인이기도한그녀가교황으로부터‘결혼무효’판결을받고다시시집을간것이노르망디공작이자영국왕헨리 2 세이다

그리고그의아들이사자왕리차드이다.  그는어머니의상속영토까지합하게되어그의감투는잉글랜드왕 ,노르망디공작, 벤백작, 아키텐공작, 양주백작, 푸아티공작이다. 그리고리차드왕이이스람술탄살라딘과힘겨운싸움을하는동안프랑스필립왕이리차드왕의동생존을꼬드겨서왕이되니이때일어난사건을소설화한것이영화‘흑기사..아이반호’이다

그리고그로부터 300 백년정도후에잉글랜드왕이가지고있는이노르망디를비롯한땅을가지고 1337 년부터 1453 년까지 100 년이넘는지루한전쟁이지속된다. 소위이 100 년전쟁이끝판에 (쟌다크)라는구국의소녀가등장하며막을내리며결국그땅이프랑스의귀속으로끝이난다.

그리고마지막 1944 6 6 일세계 2 차대전의대전환이되는소위연합군의노르망디상륙작전으로다시한번역사에등장한다.

나의이야기등으로시간을보내는동안버스는어느듯프랑스로들어섰다. 내가편견으로그런생각이들어서그런지베네룩스 3 국보다는좀여유가있어보인다. 사실예를들자면베네룩스 3 국그리고독일까지도도로휴게소의화장실을사용하려면‘유로’로보통 50 전정도돈을내야한다. 이때그영수증으로그곳에서물건을사면 50 전으로계산에서빼주지만말이다. 그런데프랑스의휴게소에서는그냥사용하게한다.

길가의농지도그리고가축들도규모가커보아고여유가있어보인다. 우리가제일먼저도착한곳은옹플뢰르(Honfleur) 라는항구해변의식당거리이였다. 그리고우리는곧바로식당에들어갔다. 그리고그곳에서최소한한시간반을점심먹는것으로보냈다. 전식으로새우, , 홍합, 게를주면서그것에궁합이맞는백포도주가겯들여나왔고메인요리, 그리고후식으로초콜렛케잌까지먹으면서떠들고있어야만문화인취급을받는듯했다.

그리고그것이이번여행을주도한한스여행사의의도이었는지, 프랑스에서는다들그러는것이였는지모르겠으나프랑스의 3 박동안언제나여러종류의전식과그에곁드린포도주, 그리고여러나라의메인접시가끝난뒤후식까지먹도록하면서일정에는전혀신경을안쓰고점심시간으로한시간반정도를보낸것같다.

내입이그리고급이못되어솔직히와인, 치즈, 그리고빵들의맛의향연을누리지는못했다. 그저맛있게잘먹었다정도라할까? 그러나가이드의한마디는지금도기억에남는다. ‘드골대통령이퇴임인사에서이런말을했죠, 300 개가넘는치즈의맛을즐기는프랑스국민에게내가다만족을시킬수는없었습니다’파리수도사에게서브리(brie) 치즈를전수받아이곳특성을가미해서만든치즈를먹으면서들은말이였다.

옹플뢰르항구의옛시가지와목조로지은성케더린성당, 명화‘남과여’의촬영지이자화가모네를낳게한화가르잔느부뎅이즐겨찾았다는목조다리등은보았으나그리대단한것같지는않았다. 다만좀떨어진곳에있어서가보지는못했으나영화‘셀부르우산’으로유명한셀부르항구는예로부터해군기지로유명하여병인양요때강화도규장각을약탈한본거지이었고, 몽셍미셀수도원을들렸다가잠간들른성말로(St. Malo)에서보니이곳해안항구들이카나다의퀘벡, 라오스, 베트남등을비롯한세계식민지개척의항구도시들로나의호기심을이끈것들이제법많을듯했다.

그러나이곳노르망디지역관광의백미는역시몽생미셀(Mont Saint Michel) 이었다. 밀물이들어오면잿빛모래위에섬이되었다가썰물에는긴백사장길이되는이수도원은 8 세기부터 11 세기까지베네딕트수도원으로 60 명의수도사와그들에게딸린 600여명의사람들이살았다한다. 내부를들여다보니여러귀족들이이곳을찾아봉헌도많이했고그래서귀한손님을맞이할시설또한많았다. 그리고 100 년전쟁때영국군의침입을막으려고대포들이남아있었다

15 세기때지진으로일부개축도했다했고, 프랑스시민혁명당시에는수도사들이모두떠나
7 명만살다가나포레옹시절에는형무소로쓰인적도있다했으나이암반위에 150 미터높이에세워진이수도원은말그대로노르망디해안의보석이니, 세계 8 대불가사이이니하기도하고, 또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지정을받기도하는데사실그렇다고하다고해야할것같았다.

이수도원입구에는유명한식당이있다. 계란으로만만든오믈렛이다. 크린턴대통령등유명인사들이먹고있는사진도걸려있다. 그러나그것은나에는그림의떡이다.나는그날그저짝퉁오믈렛에만족해야했다.

                                           

                                                   4 화 프랑스중부루아르(Loire)에서

4-1)  71 개의고성이있을수있었던까닭

우리는노르망디의몽생미셀수도원떠나서루와르로향하였다. 그런데길이좀좁아보였다. 브레티니지역에들어선것이다. 가이드의설명에의하면이브레티니상속자가프랑스왕에게시집을가는데내민여러조건중에하나가이지역에서는일반인들에게통행세를받지않는다는조건이있어아직까지도통행세를받지못해유로고속도로가없이국도정도의좁은길이라설명한다그런데나는브레티니상속녀가프랑스왕에게시집을갔다는것에약간의설명이필요하다.

브레티니는영국과프랑스의백년전쟁의주무대이었다. 전쟁초기에는영국이대승을하고프랑스왕‘잔 2 세’는포로가된다.  그래서 1 차브레티니평화조약으로프랑스가거액의돈을주고아키텐과칼라지역을영국에게넘겨준다. 그러나영국군의약탈과압제로반항하며일어난반란군을등에업고프랑스가영국군을물리친다. 그래서다시 2 차브레티니평화조약으로빼앗긴땅을다시찾는다.

이전쟁터는그후브레티니공작령으로있다가그의상속녀가프랑스왕과결혼을함으로서완전히프랑스에귀속된다. 참으로복잡하다

드디어버스는루와르에들어섰다. 루와르강을끼고포도주의명산지로도널리알려진지방이다. 그런데도로변의휴게소에서안내팜프렛을집어보니‘우리성을찾아주세요’하며안내하는한장에쪽지에 71 개의성의우표딱지크기사진과주소, 전화번호, 이메일등이인쇄되어있다. 오랜역사, 그리고왕, 공작, 백작, 남작들이성을갖기도했다하지만 71 개의성이라니참으로많고도많은숫자의성이다

그러나다시한번곰곰이생각해보니꼭그런것같지만은않은듯하다. 우선나나름대로지배계급을생각해보았다. 우선절대적인정답이나원칙은없다는것과나의개인적인추론이라는가정을두고하는말임을전제로한다

기사(Knight) 는귀족출신이다. 그러나어떤직위라도상속받을수있는장자가아니다. 왕이나제후들이보통얼마의봉토를주며‘무술(기마)를익히고유사시에나를도와야한다’하여그렇게사는귀족의말단이다.

참고로기사는기병하고다르다 . ‘돈키호테’소설에서는‘산초’라는시종하나를거느리지만본래말잡이, 말돌보는사람, 무기담당, 식사당번까지한기사에따린인원은최소한 8 명이상이고비상시 10 명이상의전투단위병력이된다. 십자군시대에예루살렘에탬플기사단, 병원기사단이탄생하고나중에지중해섬으로쫓겨서로도스기사단, 말타기사단등이있었다. 이들은보통 500 명의기사단이라불렸으나이기사단이란집단도전투병력이최소 2000 이훨씬넘었다.

남작하면나는고려를일으킨왕건이생각난다. 그는 32 명의여인과결혼했다. 그것이왕건이바람쟁이이어서가아니라 32 명의지방토후의딸이나여동생하고정략결혼을한것이다. 그만큼나라의안정에토후들의도움이필요했단말이다. 남작이라는직위는왕이지명하기도했으나대부분은지방의권력과국권을잡고있는토후들이었다. 이기사라는기초단위위에이남작이있다는말이다. 물론기사를 2 명둔토후가있는가하면막강한군사력을지닌남작도많았고말이다.

그런데봉건시대의낭만의꽃이라할기사와남작의권력이중앙집권화되면서왕들이남작과기사직위를그저어깨위에검을대고작위를주는마구잡이로남발하기도했고지금도진행하고있기도해서권위가추락하고있다.

백작하면공연히드라큘라백작, 몽테크리스도백작같은소설속에가공인물이나존몬테규샌드위치백작이생각난다. 허지만사실귀족의핵이다. 사실남작령이나케톨릭주교령같은지방세력과도시를총괄지휘하는직책으로왕이직접임명했었다. 그뒤세습도되고, 자체군사경제적힘으로백작임을자처하고나서기도해서좀햇갈리고있기는하다

그리고공작이란본래왕자같은왕족들만이될수있었고후에발부아,브로봉같은왕가를이루기도했지만게르만족같은야만인이들어와서큰세력이되어프랑스왕이나신성로마황제는유화책으로그들부족장에게공작지위가부여되기도했다.

이러한상황에서왕, 우리나라로치면왕의동생대군인공작, 관찰사쯤되는백작그리고고을원님쯤되는남작들이각각자기집을지었으니그것이곧성이다우리나라개념의남한산성이나, 행주산성같이방어의개념과군대의주둔같은성도있으나그냥대규모의저택개념의성도많이있었다. 그래서이좁은땅에 71 개의성이있는것이라고나혼자생각하고그러한마음으로성들을돌아보았다.

또한당시는우리나라의경복궁같은정궁개념이아니라파리베르사유궁에있으면파리가수도가되고왕궁이요, 르와르의왕브와즈에있으면그것이수도이자왕궁이었다. 그래서어느궁이나접견실, 회의실, 그리고중요한파티만찬실이있다

4-2 ) 왕궁 3 개를방문하면서

그런데이번여행에서한스여행사가이중 71 개성중에서 3 개의왕궁을선택한것은아주잘선택했다는생각이들었다. 당시의왕이자기자신을잘보이려는이미지는무엇이겠는가 ?  첫째가미남에다가모든여성에게달콤한꿈을주게하는멋진사랑과연애주인공, 그리면서강한남성의이메지를주는명사수의사냥꾼, 그리고왕가의권위를느끼게하는왕의가족들의혈통이자권력층의연계이었을것이다

이러한점을고려할때왕의권위를주는앙브와즈((Amboiae) 왕궁, 사랑의드라마가연출되는쉬농소(Chenonceau) , 그리고 32 키로둘레에울창한수풀사냥터속에우뚝서있는샹보르(Chambord) 성으로우리를안내했으니이보다더잘계획은없는듯했다.

우선왕브와즈는루와르강과아마스강의합류지점으로군사요지로 5 세기에지어졌다가 1214 년까지몇백년의역사속에주인공은다들어도혼돈만준다. 다만 1214 년필립오귀스트왕의지배하에들어서고그리고레오나르드다빈치가 1516 64 세의나이로프랑수아 1 세의특별초정을받아이곳에온다. 그는왕의수석화가, 엔지니어, 건축가로이곳에서많은일을하다가사망했다. 그리고왕이이성에매장되는특권도주었다. 남아있는그의무덤터에조각, 그의활동을설명하는그림등이인상적이었다. 성안에너무나볼것이많아많은시간을보네는바람에이곳에다빈치박물관이있었지만시간이없어아쉽지만못들렸다.

두번째들러본성은질투의성쉬농소성이다. 1547 년국왕앙리 2 세가제분소이지만요세화한성을개축하여애인인 (디안느드뿌아티에) 에게주고열애에빠져있었다. 그러나가그가죽자왕비 (까트린드메디치)가뿌아티에를쫒아내보네고그녀가그성을차지한다. 그런데메디치가문이어떤가문인가? 플로랜스를지배하던가문이다.

당시전쟁이나면누구나이메디치가문에돈을꾸러갔다. 그래서돈을빌릴수있는가문이전쟁에서승리한다는예상이아니라판결이난다는가문이다. 이가문에서교황이 2 명이나나왔고, 지금플로렌스에가면우피지미술관이그들의궁성이었다. 그녀는뿌아티에가만든정원과경쟁하듯더넓게화려하게지었다.

그후그의아들앙리 3 세가죽자그녀의며느리 (루이즈드로렌노) 가조용하지만그녀대로생활을영유했다. 그로부터명성에이끌렸는지돈많은귀족부인들이이곳에소유권을넘겨받으면서이어서갔다. 흥미있는것은어느여인도먼저여인들의자취를없애버린것이아니라각여인들의방을보전하면서‘내가더잘해놨지’하는식으로꾸며놓은것이흥미롭다.

그러면서아주오래되었지만영화 ‘제 3 의 사나이’라는영화가생각나면서한씬(Scene)이너무나강렬하여기억에남는다. 놀이터에커다란물레방아모양의회전바퀴대에서 (주인공이름대신배우이름이지만)  배우오슨웰스가조셉코튼에게개미같이작게보이는아래길가의사람들을가르키면서이렇게이야기한다‘스위스의 500 년평화는비둘기시계밖에못만들었지만메디치가문의억압은미켈란제로의위대한예술을낳았지“

마지막으로방문한곳이상보르성이었다. 둘레 32 키로의숲속에세워진이성은내가본 3 개의성중에서가장규모가크고아름다웠다. 프랑즈와 1 세가 1515 년에건축을지시하고그가 1545 년에처음으로입주하였다고하니 30 년에걸쳐지은성이다. 네오라르드다빈치도이성건축설계에관여했었다고한다.

정말로볼것이많았다. 프랑즈와 1 세의문양인불뿜는도마뱀으로부터앙리 2 , 루이 14 , 루이 15 세그리고아마도이성을관리하던것으로추측되는상보르공작등의방과가구, 데코레이숀, 그림등참으로많았다. 그런데오직사냥목적으로만지은때문인가, 32 키로둘레에아무것도없는곳이였기에쓸쓸히역사에서사라졌다.
루이 15 세의장인이폴란드왕이었는데정변으로프랑스로도망을왔다. 그는장인에게이상보르성에서살도록마련했다.그러나겨울이면황량한추위와고독으로그곳에서살기를포기하고나와버렸다. 그리고챨스 5 ,보르도공작, 베리공작부인등이소유권을갖다가프랑스혁명에망명가는바람에폐허가됐다가 1917 년프랑스정부가인수했다고한다.  그동안에한국식의소유권등기부등본인가무엇인가를드려다보면그소유자이름이하도많아아마도골치가아플것같다.

이제프랑스여행이끝나간다. 내가볼리스(Bolis) 라는마을에호텔에서귀리인가하는곡물로된싸먹는(Wrap) 음식에다가포도주를마시면서가이드의말에귀를기울인다.본래이곳은시계만드는곳으로유명했는데그들이모두신교도들이라스위스로종교의자유를찾아갔고그래서스위스가세계시계생산에메카가됐다고한다. 변화를싫어하는이곳농부들만남았는가?

봉건시대에이곳농부들은생산에 25 %를소작료로내면영주가모든안전을지켜주었다. 아마도어떠한정신스트레스도받지않고말이다. 그들은이제옛날백작의딸과기사들의사랑이야기를아라비안나이트이야기로알고낭만의꿈을꾸고있을까?

이곳에는일본사람들이어느나라관광객보다많다. 그들또한과거쇼군시대에성주와사무라이들과의얽히고설킨이야기를회고하는지도모르겠다. 그리면서그들의상상의나래를이곳성에다오버랲시키려고이곳을찾고있는가?

내가 3 일간다녔던이곳은그저그냥보았던 (노르담드파리) 같은성당들이아니라그것들을만든주연들의삶의현주소였다.그러면서나또한과거의꿈속으로빠지게하기도했다.

이것은필시나의과거로떠난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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