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편)김유정의 스페인 여행 리포트 후편

김유정 | 7/3/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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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의 스페인 여행 일지  2

 

5/22 다섯째     마드리드

아름다운 안달루시아 지방을 떠나 바람이 많은 고원지대를 지나 카스티야 지방의 주도 마드리드로  떠났다. 가는 길에 세르반테스의 소설인 돈키호테의 무대인 라만챠를 지나 갔다. 곳곳에 풍차도  보이고 태양열 주택,도토리를 먹는 흑돼지도 보였다.
도토리를 먹은 흑돼지의 다리로 만든 하몽이 제일 비싸다고 한다.
하몽이란 돼지 다리를 소금에 절여 건조시킨 햄과 비슷한 스페인의 전통 음식이다.
맛은 짜지 않으면서 쫄깃한 질감과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며 육즙이 살아 있었다.
우리는 추박사의 이사벨라 여왕과 콜럼버스, 오매불망 남편만을 사랑한 비운의 열녀 후아나 공주,스페인의 왕과 왕비 이야기들을 들으며 피곤함도 잊은 하나라도 배우려고하는 어린아이들 처럼   잠도 자지않고 3-4 시간을 달렸다. 우리들 덕분에 쉬지 않고 말을 많이한 추박사의 목소리가 쉬었다.ㅠㅠ최고의 가이드!!
스페인의 수도답게 길은 트이고 차도 많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마드리드는 대도시임에 틀림없었다. 컬럼버스는 스페인의 영웅이라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의 동상은 어딜 가도 자주 수가 있었다. 이번 여행중에 처음으로 한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비록 미국에서 먹는 한식당에 비하면 보잘 없었지만 우리는 모두 건강하게 배가 불러져옴을 느낄 있었다.

먼저 프라도 미술관을 관람했다.입구에는 고야의 동상이 고약하게(?) 우뚝 있었다.
프라도는 스페인어로 마굿간이란 뜻이란다.15세기 이후 스페인 왕실에서 수집한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스페인 회화의 3 거장이라 불리는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그레코(El Greco)   라파엘,보티첼리,보쉬,루벤스등 세계 저명한 화가들의 수많은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프라도 라는 이름에서 웬지 모르는 도도함의 멋있음이 느껴졌다.
추박사가 미술을 전공한 가이드라서 설명을 너무 잘해 고등학교 미술시간인듯 착각되었다.  지금도 생생한 프라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벨라스케스의 다른 모든 작품들이 '시녀들 ' 보호하기 위해 둘러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미술관 중앙의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피카소는 40번이 넘게 다른 시각에서 '시녀들' 모사하고 변형시키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고 한다. 천재 피카소 마저도 이처럼 몰두하게 만들었던 그림은 일찍이 없었다. 신비로운 빛과 어둠의 세계, 상징적으로 겹치는 삼차원적 공간. 바라보고 있으면 그림 속의 세계로 점점 빠져드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재미있는 것은 작품안에 벨라스케스 본인이 있다는 것이다.
궁중 화가의 한사람인 너무나도 유명한 두작품-' 벗은 마야' ' 입은 마야'
실제 작품과 마주하니 비로소 내가 스페인에 있음을 실감했다.
고야의 대작인 '1808 5 3'- 무능한 스페인 군주, 탐욕스런 프랑스 나폴레옹 , 프랑스의 앞잡이들...그리고 1808 5 2일과 3일에 벌어진 프랑스 군대에 의한 스페인 양민학살. 고야는 캔버스에 자신의 손가락 피를 직접 묻혔고 자신의 모습도 직접 그려 넣었다. 사건 스페인 국민들은 곳곳에서 소규모 프랑스 군대에 맞선다. 바로 게릴라의 단어가 탄생하게 된다. 비극적이고 고통스럽고 너무나 사실적이서 온몸이 부르르 떨려옴을 느꼈다.
그레코는 그리스에서 태어난 스페인 화가로 스페인어로 그리이스인 이란 뜻의 그레코 라는 말을 불인데서 유래되었다.
'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엘그레코의 작품 가운데 수작중의 하나이다.그림 인물들은 목이 길고 몸도 길다. 그래서 그레코의 그림은 온화하면서 따스하지만 또한 슬퍼질 때도 있다. 마치 노천명 시인의 '사슴' 생각나는 그림이다.깊이 있는 눈매가 살아서 쳐다보는 같다.그러나 거기엔 무언가 열정이 감추어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관람을 끝내고 나오는 다른 한쪽에 줄이 많이 늘어져 있었다. 뭐냐고 물었더니 무료 관람하는 줄이라고 하였다. 폐관 2시간 부터 무료 개방한다는 것이다.프라도 미술관은 이렇게 열린 공간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갈 있다는 장점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된다.

마드리드에 와서야 스페인의 전통 음식인 타파스를 맛보게 되었다.타파스란 식욕을 돋우어 주는 애피타이저의 일종으로서 스페인에서는 저녁이 아주 늦어서 대개 9시에서 자정 까지 저녁 시간이 상당히 많은 시간이 남는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은 종종 타파스를 간단히 먹는다. 점심이 1~3시이므로 12 쯤에 사람들끼리 모여 담소를 나누는 용도로도 타파스를 먹는다 한다.  바게트 빵위에 하몽,엔초비,치이즈등을 얹어서 먹었는데 특히 엔초비가   입맛에 맞아 옆의 테이블에서 남은 까지 먹었다. 짜지도 않으면서 올리브 오일과의 어우러진 맛이 중독성이 강했다.

호텔로 돌아온 저녁시간이 너무 아까워 참을 수가 없었다. 뜻이 맞는 사람들 5명이 택시 2대에 나눠 타고 마드리드 다운타운으로 갔다. 스페인 사람들의 일상을 보고 싶었다. 택시기사는 전혀 영어를 할줄 몰라 답답했다.
재래시장이라 있는 'Mercado De San Miguel' 도착했다.
그곳에는 커피샵,쵸콜렛,생선,타파스 파는 ,와인,,하몽, 젤리와 캔디, 코르크로 만든 백과 지갑.... 밝게 빛나는 조명 아래 늦은 시간( 10)인데도 젊은이들로 가득찼다. 퇴근하고 들른 양복입은 회사원들부터 연인과 함께온 젊은이, 친구와 함께 사람들.. 그들이 먹는 고추볶음(올리브 오일에 꽈리 고추를 소금 뿌려 살짝 볶음), 뱀장어 새끼요리(모밀 국수 같이 생김), 링귀스티니(새우랑 비슷함)회등을 맛보면서 자리를 비집고 앉아 함께 친구들과 모처럼 만에 수다를 떨었다. 이런 사소한 행복에 그동안 지친 피로감이 가셨다. 순박하고 친절하고 낙천적인 스페인 사람들을 엿볼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함께하지 못한 분들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에서 개인 행동은 위험하다고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그렇지만은 아닌 싶다. 좋은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 역시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5/23 여섯째   톨레도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한시간 남짓   달려 스페인의 중부 도시 톨레도에 도착했다.
톨레도 주의 도시이고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유적이 공존하는 장소이며, 스페인의 수도이기도 하다. 스페인 역사상 수많은 유명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다. 그만큼 역사가 오래 되었고, 보존되고 있었고 정적이며 차분했다.
톨레도의 길들은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길로  실제로 거리를 걷는데 오래된 느낌이 팍팍 나서 정말 중세 시대에 있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멈춰진 했다.
올드 타운은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으로 이어져 있어서 길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도시의 규모가 크지 않아 천천히 돌아 있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을 만큼 정말 대단한 도시였다.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것도 대단하고,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생활한다는것도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졌다. 좁은 골목골목으로 차들 다니는것도 신기했다.
톨레도의 () 굉장히 유명하다. 중세 시대, 유럽보다 단계 앞선 문명을 가졌던 무어인들이 앞선 제조 기법을 이곳에 전수하였는데, 때문에 무기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였고 상점에서 , 무기 등을 많이 팔고 있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칼과 갑옷도 톨레도에서 직접 제작됐다고 한다.

톨레도 대성당
톨레도 중심부에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며 있는 성당은 인간이 만든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규모나 세련미, 그리고 화려함 유럽 어느 곳에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멋지다. 대성당은 스페인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알폰소 8 만든 것이다.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성당이 그러하듯 대성당의 정면에도 개의 탑이 양쪽에서 서로 대칭을 이루도록 설계되었으나 한쪽만 완성된 남아 있다. 높이 92m 탑에는 18톤에 달하는 대형 종이 매달려 있다. 성당 정면에는 화려한 조각이 인상적인 개의 문이 있고 문을 통과하면 내부로 연결된다. 성당 내부의 둥근 천장은 톨레도 대성당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기법으로 만들어져서 사다리꼴 대신 삼각과 사각의 형태로 되어 있다. 내부는 장신구, 오르간, 조각품,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등과 그레코, 고야, 티치아노 거장들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예배당에 있는 제단 병풍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물로 당시 이미 스페인에 유행하기 시작한 르네상스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제단 병풍의 섬세함은 감탄하지 않을 없었다.

알칸타라 다리
알칸타라 아랍어로교량 뜻하는 . 문은 톨레도에서 가장 오래된 문이자 시가지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타호 위에 놓인 다리의 기원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가나 이슬람 통치 시와 알폰소 10 부분적으로 보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다리에는 원래 서로 마주보고 있던 개의 탑이 있었는데, 1721 펠리페 5 마차의 통행을 위해 하나를 부셔버렸다.

 
산토 토메교회
그레코의 작품인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Entierro del Conde de Orgaz’으로 유명한 교회. 교회 자체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지만 그레코가 1586년에 완성한 그림은 종교화의 걸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상하 2단으로 나뉘어 위는 천상, 아래는 지상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1700년대 이전의 그림은사실적 표현인데 반하여 그림은 그레코의 머릿속에서 구성된 그림이다.

파아란 하늘과  앤틱하고 멋있는 중세도시 톨레도를 빠져나와 현재로의 귀환을 아쉬워하며...점심식사를 다시 마드리(마드리드를 그렇게 부름) 도착했다.
중세가 끝나는 르네상스시기인 16세기에 스페인 왕인 펠리페 2세가 수도를 톨레도에서 이전한 이래로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정치적 중심지가 되어 왔던 도시이다. 실제로 마드리드란 도시의 대부분은 17세기에서 19세기의 기간 동안 건설되었다고 있는데, 스페인의 다른 도시에 비해서 마드리드에는 중세풍의 건물이 많지 않고 파리나 런던처럼 근대도시의 모습을 보이는 면이 많다.눈에 띄게 분수가 많고 물이 깨끗했다.
마드리드에는 성처럼 보이는 건물이 많아서 마치 동화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시청조차 하얀색 첨탑과 신고딕 양식으로 꾸며져 멋진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종종 건물 옥상에 조각상이  만들어져 있기도 하고 ...역시 유럽의 나라들 답게 잔디밭만 있으면 사람들이 그위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스페인 광장이 나오고 세르반테스 기념탑 아래에 돈키호테와 산쵸의 동상있다.
기념탑 꼭대기에는 책을 읽고 있는 다섯명의 여인이 조각되어 있는데 5대륙을 상징한다고 한다. 밑에는 이사벨라 여왕이 자리잡고 있다.스페인 사람들은 이상을 꿈꾸는 돈키호테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드리드 왕궁(Palacio Real) 스페인 왕이 거처하는 궁전이다.
유럽에서 가장 규모도 크고 인상적인 왕궁 중의 하나. 바로크식 양식으로, 무려 2000 여개가 넘는 방이 있으며 50 개만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오래 아랍인들이 지배할 당시 요새화된 왕궁을 개조하여 오스트리아왕가의 성으로 사용했다. 화재로 왕궁이 불탄 펠리페 5세가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돌과 화강암 불타지 않는 소재로 건축하도록 하여 1764 완공됐다.  1931 마지막 알폰소 13 까지 역대 스페인 국왕들의 거처로 사용됐으며 지금은 박물관, 영빈관 또는국빈 리셉션 국왕공식 행사가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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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는 스페인의 전성기가 지나서 유럽의 정치무대에서 소외되었던 시기로 스페인의 경제력의 그렇게 좋지 못했던 상태여서 그런지 유럽의 다른 국가들의 왕궁에 비해서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다고는 없어 보이나 내부는 감탄하리 만큼 화려했다. 대부분 왕실 천장은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금박장식이 되어있고 바닥에는 빨간 카페트가 깔려 있었고 가구들과 소품들이 무척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천장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아래 거대한 상젤리에가 있었고 도자기의 천장은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고 가운데 상젤리에가 걸려있어 멋진 천장에 입이 다물어졌다.
왕궁식당은 한번에 145명이 식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방방마다 커튼,벽지,가구등 색깔을 맞춰 디자인하고 장식한것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오리엔탈 방에 중국과 일본 그림은 있었으나 우리나라것은 없어 섭섭했다.동양에 대한 호기심과 신비로움을 열망했다는 것을 엿볼 있었다. 웅장하고,우아하고 화려하고 아름답고 ...나는 구경하는 내내 !! 감탄사를 연발했다. 밖으로 나오니 넓은 광장이 나오고 왼쪽으로는 왕실 교회인 성모 대성당이 있다. 거기서 아래쪽을 내려다 보니 마드리드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파란색의 하늘과 흰색의 왕궁이 너무나 어울려 한장의 엽서 같다. 걸어내려오는 길에 초록이 우거진 정돈된 정원과 역대 왕들의 조각상, 대리석 계단, 곳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들.. 자유롭고 한가하게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을 있었다. 빵집 건물이 너무 럭셔리하고 실제 빵을 장식해 놓은 것이 특이해서 사진도 한방 찍었다.

마드리드의 중심에 있는 푸에르타 (Puerta del Sol).
'태양의 '이라는 뜻으로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도심의 중심지가 되는 푸에르타 광장. 광장 가운데에는 분수와 카를로스3세의 동상이 있다.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붐볐다.걸어가는 동안 소매치기를 조심하며 걸었다. 백화점, 서점, 기념품등 많은 상점들과 행위예술하는 사람도 많았다.

마드리드의 가장 유명한 명소 마요르 광장(Plaza Mayor).
중세시대에는 도심 외벽에 위치한 시장이었던 곳으로, 펠리페 2 광장으로 만들 것을 명했으나 1617 펠리페 3 공사가 시작돼 2 완성됐다. 광장은 축제, 투우, 국왕 대관식, 왕가의 결혼, 마녀재판과 사형 집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행사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며 지금도 시민들이 다양한 의식이 행해진다.

레알마드리드 왕궁에 못지 않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 중앙 우체국 -정말 놀라웠다.대리석으로 만든 머리 2개의 사자가 끄는 전차에 여신 키벨레가 타고 있는 분수가 우체국 앞에 자리하고 있다.

스페인 은행 건물-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궁전 양식을 모델로한 멋있는 건물
그란비아 거리-우리나라의 명동과도 같았다. ,극장,카페,레스토랑,호텔,부틱들이 길거리를 장식하고 있었고 스페인의 역동적인 심장부임을 느끼게 해주었다.우리 부부는 하루 일정을 마치고 (?)살짝 빠져나와 거리를 걸었다.가끔씩 스타벅스도 눈에 띄었다.기마상이 있는 건물도 있었고 메트로 폴리스 빌딩 돔의 장식 유난히 화려했다. 무렵에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에스프레소와 코코아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저녁이 되니 제법 날씨가 쌀쌀했다. 옆에 앉은 부부와 어린 여자아이는 우리가 신기한듯 힐끔힐끔 쳐다봤다.ㅋㅋ내 기억에 커피는 3유로,코코아가 7유로였던 같다.아주 비싼 코코아를 마셨던 기억이다. 카페안을 쳐다보니 천정과 벽이 모두 기가 막힌 예술 작품이었다.아마도 유명한 카페인 듯하다.
아쉬웠던 것은 소피아 왕비 미술관에 있는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  관람하지 못한것이다. 바르셀로나에서의 피카소 미술관을 관람을 기대하며 하루를 보낸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 다가올수록 화가 난다고 하는 남편의 말에 함께 사람들이 모두 동감하며 폭소를 터뜨렸다.

5/24 일곱째    바르셀로나

스페인 고속열차 AVE (우리나라의 KTX) 타고 바르셀로나로 가기 위하여 아토차 (Atocha) 기차역으로 갔다. 공항과 같이 보안 검색이 철저했다. 역사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온실 같기도 거대한 식물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TV 모니터에서는 축구 경기를 방영하고 있었다.  역시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의 나라임을 실감케 했다. 시간이 되어 기차에 올라 짐을 싣고 자리잡았다. 식당칸에서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니 2시간 40 만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식당칸에는  좌석이 없어 불편했지만 조용하고 흔들림이 없어 커피를 마시기에 적당했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스스로를 스페인 사람이라기보다는 카탈루냐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지방색'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예를 들면 피카소가 유년시절만을 말라가에서 보냈는데도 스페인 출신이 아니라 말라가 출신 이라고 말하는 처럼.
우여곡절 끝에 카탈루냐는 1979 정식으로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지금 이곳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2 도시 바르셀로나가 아니다.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중심 카탈루냐의 수도 바르셀로나다. 스페인은 건물에 스페인 국기를 게양하지 않고 카탈루냐,카스티야, 자기 지방 깃발을 게양하는 것이 특이했다. 바스크와 카탈루냐 지방의 국수주의자들은 스페인 통합이전의 개별국가로 돌아가기를 열망한단다. 스페인어를 쓰지않고 카탈루냐어를 쓴다고 한다.
추박사는  바르셀로나에서 공짜로 커피 마실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바르셀로나  커피샵에서 커피를 시켜 마신후 마드리드를 칭찬하는 말을 하든지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를 칭찬하면  돈을 받지 않고 가라고 한단다 .
세계적인 관광도시로서 매우 귀중한 문화유산들을 보유하고 있는 해변이 아름다운 도시이다. 여기서 수상 스포츠나 일광욕을 즐기며 해변에 늘어져 있는 카페와 음식점에서 간식과 식사를 즐길 있는 낭만적인 도시이다.
세계 최강의 바르셀로나 FC 도시 이다.
가우디,피카소,미로등 천재 예술가를 배출한 도시이다.

Port Bell  
마레 마그늄식당에서 오징어 먹물 빠에야(스페인 전통 음식) 아주 맛있게 먹었다.아주 우묵한 팬에  오징어 먹물로 만든 거무스름한 밥과 오징어가 조금씩 씹혔다.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탓에 음식도 영향을 많아 받은 듯하다. (,사프란을 사용하는 ) 우리나라 처럼 부드럽지 않고 덜익은 쌀밥 같았으나 여행와서는 그나라의 음식을 맛봐야 그들의 문화에 들어갈수 있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 한잔의 여유도 함께......버스를 타고 '씨에스타'(낮잠) 즐기며 가니 어느새  몬주익 언덕에 도착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에서 우승한 우리나라의 황영조 선수의 동상( 돌에 달리고 있는 황영조 선수의 모습을 새겨 넣음) 외국에서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바르셀로나 마라톤 코스였다고 하는데 언덕이 높아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중해 바다를 향해 손가락을 높이 콜럼버스동상(FC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람블라스 거리와 바다가 만나는 광장에 우뚝 있었다.1888 만국 박람회때 미국과의 교역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단다. 대서양이 아닌 지중해를 향한 콜럼버스 동상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정서적인 안달루시아에 비해 바르셀로나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임을 상징하는 했다. 람블라스 거리에서 바르셀로나의 활기찬 모습을 한눈에 확인할 있었다. 람블라스 거리를 걸어가다 보니 옆에 광장이 있어서 잠시 쉬었는데, 나무와 분수의 배치, 바닥의 문양 등이 예술작품 자체였다. 녹음이 우거진 가로수가 시원한 산책로, 꽃과 새를 파는 노점이나 거리의 예술인 등이 북적대며 온종일 오고가는 사람들을 반기고 있어 구경하는데 시간가는

몰랐다. 얼마정도 걷다보니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크고 자랑할 만한 시장인
 St. Josep
시장 입구가 눈에 띄었다. 지중해의 여러 과일을 얼마나 예쁘고 질서 정연하게 쌓아놨는지!    노랑, 빨강, 초록, 하양, 검정등의 여러 색깔들이 제각기 자기들을 봐달라고 뽐내는 보였다. 또하나 특이 했던 것은 계란,거위알,오리알, 칠면조 ... 알종류만 하나 가득 차곡차곡 쌓아놓고 파는 집이었다. 관광객들은 여기저기서 사진 찍기 바빴다.
추박사가 스페인의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브랜드인 ' Desigual ' 권하길래 들어가 보았다. 울긋불긋한 색깔이 정신없이 무질서한 무늬와 디자인으로 디스플레이 되어 있었다. 과연 스페인의 자유분방한 화려함과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가게 안에 있는 계단의 카페트도 층층이 디자인을 달리 했다.
차들과 사람이 붐비는 카탈루냐 광장에는 시원하게 뿜어대는 분수와 잔디위에 누워 있는 사람들, 오손도손 앉아서 담소하는 사람들, 원을 그리며 춤추는 사람들, 비둘기에게 모이 주는 사람들,  자유롭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오후가 되면서 어둑 어둑해지자 여기 저기서 하나 둘씩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의 야경은 화려하고 아름답기가 그지 없었다. 바닷가의 카페에서 케잌 한조각과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내일은 우리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가우디와 피카소를 만나는 !!
정말 기대가 많이 된다.


 5/25 여덟    바르셀로나

너무 일찍 서두른 탓에 피카소 미술관이 오픈하기도 전에 도착했다. 조용하고 좁고 미로 같은 골목길(몬트카다 거리) 위치하고 있었다. 1881 안달루시아의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1894 미술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바르셀로나로 옮겨왔다. 그리고 19 무렵 파리로 떠날 때까지 거리에서 미술학교를 다니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파리와 바르셀로나를 오가며 피카소는 청색시대, 장밋빛시대, 그리고 큐비즘의 세계를 거치면서 세계적 거장이 되었다. 1963 스페인 정부는 고딕지역 내의 아퀼라르궁을 피카소를 위해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모습이 그대로 간직된 곳에서 직접 피카소가 활동한 도시에서 작품을 보고 있으니 더더욱 감동적이다. 아담한 건물 안에 들어가니 작은 공터와 작은 하늘이 올려다 보인다. 미술관에는 유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의 작품들이 골고루 있었다.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어린시절 피카소가 그렸던 그림이며 사용하던 스케치북,종이에 갈겨 낙서들을 어머니가 모아두었던 것이다. 참고로 우리 딸도 미술을 전공했는데 어렸을 작품은 하나도 없다. 뛰어난 인재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는 법인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 영성체', '과학과 자비', '기다림'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라스 메니나스)' 자신의 버전으로 새롭게 해석한 그림들이 있다.  벨라스케스를 좋아했던 피카소는 지금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 중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큐비즘으로 재해석하여 다양한 종류(43) 연작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 아비뇽의 처녀들' 뉴욕의 모마 현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가게에서 마그네틱을 사니 피카소와 더욱 친근해진 느낌이다.
미술관 밖으로 나왔다. 나오다 뒤돌아보니 미술관 명패 두개가 눈에 띈다.
Museo Picasso
밑에 Museu Picasso 라고 씌여 있는데 밑의 것은 카탈루냐어로 씌여진 것이라네.....ㅎㅎ
점심으로 먹은  스페인의 피자는 이태리는 가봤지만 아마도 이태리에서 먹는 피자보다 맛있었던것 같다. 날씨도 너무 좋고 공기도 상쾌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행이라 그런지 행복하다.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1852-1926)!!
가우디 작품을 보기 위하여 세계 곳곳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온다고 하니 가우디 명이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활동적이고 자유스런 곡선 형태를 특징으로 디자인 하며 자연주의적인 요소와 바로크('과하다' )적인 요소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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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아르누보(new art) 사람으로 분류된다.
상상을 초월하여 새로운 시도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자체가 건축이라고 있는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오로지 성당 건축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소박한 일생을 보내다 말년에 교통사고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너무 초라한 모습의 가우디를 알아보지 하고 방치되어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대표작으로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가족 성당), 카사바트요, 카사밀라, 구엘공원등이 있다.

가족 성당(Temple de la Sagrada Familia)
 그의 나이 30 부터 죽을 까지 일생을 다해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던 작품이다.
1882
년에 착공되어 130년이 넘는 지금 까지도 공사중이고 언제 완성될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는 가우디가 설계한 걸작 하나이다. 건축가들은 가우디 사망 100주년인 2026 6 10일에 맞춰 완공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주차장이 따로 없어서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눈앞에 갑자기 하늘 높이 솟은 첨탑과 함께 거대한 건물이 나를 압도했다. 주위의 건물들과 달라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다. 지금까지 보다 왔던 교회나 성당 건물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성당이나 교회는 거의 석조 건물이었는데, 성가족 교회는 흙으로 장식한 부분이 많다. 건축 모델로는 식물, 동물, 나무, 나뭇잎